[사회] "자식 눈치? 혼자 살겠다"…'병세권&#038…

본문

17260859493152.jpg

인천 서구의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는 조종천(78)씨. 김종호 기자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가 은퇴한 조종천(78)씨는 3년 전 인천 서구의 한 실버타운에 입주했다. 20여년 전 남편이 사망하고 자녀들을 독립시킨 뒤 여생을 보낼 곳으로 실버타운을 선택했다. 약 24평 기준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33만원인 이 실버타운에 입소하기까지 꼬박 1년을 대기했다.

이곳은 대학병원과 연계돼있어 원할 때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비도 15% 할인된다는 점에 끌렸다. 조씨는 평일에 걸어서 약 15분 거리인 지하철역을 이용해 서울로 나가 극장과 카페를 가거나 친구를 만난다. 조씨는 “아들 부부가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며 “누군가에게 의탁해 생활하고 싶지 않고 가사 부담도 없어 실버타운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노인 1인 가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주거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살며 부양하던 형태에서 이제 부모도 자식도 ‘분리 주거’를 원한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1인 가구 중 60~70대의 비율이 38.7%로 가장 높았다.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핵가족화로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졸혼한 뒤 혼자 사는 노령층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노령층 1인 가구 중 혼자 사는 이유를 '배우자 사망'으로 꼽은 60대는 전체의 42.6%, 70대 이상은 73.7%였다.

17260859494745.jpg

김경진 기자

17260859496208.jpg

박경민 기자

분리 주거를 원하는 노인 혼삶족이 늘면서 실버타운 수도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전국에 20곳에 그쳤던 실버타운은 지난해 기준 40곳으로 두 배로 늘었다. 입소 세대 수도 5645세대에서 9006세대가 됐다. 서울 성북구의 한 실버타운에 사는 안모(75)씨는 “보증금과 생활비가 약간 부담되지만 자식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얼굴 붉힐 일 없이 지내며 여생을 보내기엔 제일 좋은 선택지 같다”고 말했다.

17260859497732.jpg

정근영 디자이너

최근 늘어난 실버타운 입지가 대부분 수도권 도심이란 점도 특징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 전국 현황’에 따르면, 40곳 중 28곳이 서울·경기·인천에 위치했다. ‘역세권(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이나 ‘병세권(병원과 가까운 곳)’이란 문구로 홍보하는 실버타운이 많다. 최근엔 자산운용사가 요양시설과 함께 개발하거나, 건설사가 호텔·보험사와 협력해 실버타운 건설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좋은 입지에 있는 실버타운은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사업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여건이 좋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체육·여가 등 편의·부대시설을 갖춘다”고 설명했다.

17260859499195.jpg

정근영 디자이너

실버타운 대신 역세권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를 선택하는 혼삶 노인도 늘고 있다. 4년 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소재 18평 아파트로 이사한 박모(76)씨도 이같은 경우다. 박씨는 11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부부가 함께 살던 은평구 집을 팔고 이사했다. 강북구·노원구, 경기도 의정부에 각각 사는 세 자녀와 상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박씨는 “이사 와보니 혼자 사는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이 많다. 방 하나를 근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한테 하숙집 형태로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지역자치단체 등이 건립하는 양로원·요양원 등 전통적인 노인시설은 입소 자격에 큰 제한이 없지만 찾는 이가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양로원 등 양로시설은 2008년 306곳에서 지난해 175곳으로 줄었고, 노인공동 생활가정도 2015년 131곳에서 82곳으로 감소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작은 평수의 주거 시설이 많아져 집을 따로 구하기 힘들지 않다 보니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인들도 맞벌이 부부인 자녀 세대와 함께 살며 눈치를 보는 것보다 자유로운 생활을 선호하는 추세다. 은평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이모(69)씨는 “직장 다니는 딸이 같이 살면서 아기를 봐줄 수 있냐길래 미안하지만 거절했다”며 “이젠 나도 내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노인 1인 가구의 주거지는 자산 및 소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정부 정책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고소득층은 실버타운 등 의료·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민간 시설에 몰린다.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노인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는 특히 자산·소득에 따라 양극화한다”며 “역세권 등 접근성 높은 지역에 중위소득 150% 이하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주거복지시설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9,991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