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말 바루기] ‘아니라’를 대신하는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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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같았던 추석이었다. 여기저기서 “추석이 아닌 하석이었다”는 문장을 내놓는다. 정말 맞는 표현이라고 공감하지만, 읽다 보면 ‘아닌’이 걸린다. 말이었다면 “추석이 아니라 하석이었다”고 했을 텐테, 글에서는 왜 그런지 ‘아닌’이라고 많이 쓴다. 다른 글들에서도 ‘아니라’ 대신 들어간 ‘아닌’들이 넘쳐난다. “미국 아닌 중국으로 갔다” “청소년 아닌 학부모 7명이 모였다” “상급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에서도 가능하다”처럼 쓴다. 역시 ‘아닌’이 걸린다.

‘아니라’는 앞쪽과 뒤쪽이 대조적이라는 걸 알린다. 대조적이라는 건 대등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앞쪽과 뒤쪽 가운데 어느 한쪽 말이 다른 쪽 말보다 범위가 넓지 않다. ‘아니라’의 앞쪽 말과 뒤쪽 말이 독립적으로 쓰인다. 더 쉬운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건 몽룡이가 한 게 아니라 춘향이가 한 거야.” 이 문장은 “그건 몽룡이가 아니라 춘향이가 한 거야”로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줄이는 게 경제적이어서 거의 그런다. 여기서 ‘몽룡’과 ‘춘향’은 대등한 관계다. 이 문장을 “그건 몽룡이 아닌 춘향이가 한 거야”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어색해진다. ‘아닌’과 ‘아니라’의 차이가 느껴진다.

‘아닌’이 오려면 앞말이 뒷말에 포함되는 상황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다”에서 ‘사람’은 ‘과학자’보다 범위가 넓다. “꽃이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에서 ‘것’은 ‘꽃’을 포함하고 “봄도, 겨울도 아닌 시기다”에서 ‘시기’는 ‘봄’과 ‘겨울’을 아우른다. 이 문장들은 자연스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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