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훈민정음 해례본·미인도…우리 곁에 남은 보물들이 전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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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상감청자운학문매병,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보물인 정선의 ‘풍악내산총람’, 심사정의 ‘촉잔도권’, 김홍도의 ‘마상청앵’, 김정희의 ‘난맹첩’…. 이들의 공통점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라는 것 외에도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해 지켜낸 문화재라는 점이죠. 교과서에서나 보던 이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보물을 함께하는’ 곳, 대구간송미술관으로 소중 학생기자단이 찾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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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이 일제강점기 간송 전형필이 문화보국 정신으로 수집한 문화유산과 그 가치를 소개하고 우리문화·전통에 대한 담론을 풀어가는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한 윤근혜·등가윤 학생모델과 최수혁 학생기자(왼쪽부터).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하 간송)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입니다. 1938년 서울 성북구 성북로에 보화각(寶華閣·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건물은 국내 1세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죠. 일제의 감시를 피해 지어진 보화각은 문화유산 보호·연구에 집중하다 1962년 간송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는데요. 1971년,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와 첫 전시를 기획, 2022년까지 봄·가을마다 총 93회의 간송문화전을 개최했어요.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며 간송미술관은 2019년 12월 국가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로 지정된 보화각에 연구 중심 미술관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맡기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문화유산을 상설 전시할 수 있는 분관을 처음으로 만들게 됐는데요. 바로 9월 3일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를 통해 간송이 문화보국 정신으로 평생을 바쳐 수집한 이른바 간송 컬렉션 중 국보‧보물 40건 97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했어요.

대구간송미술관에 가다

등가윤·윤근혜 학생모델과 최수혁 학생기자는 유치원부터 중·고교까지 줄 잇는 단체와 일반 관람객 수에 놀라며 미술관에 들어섰죠. 대구간송미술관 대외협력팀 윤병인 책임이 “2016년부터 준비해온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의 간송 컬렉션을 공개했다”며 전시실로 안내했죠. “자연과 어우러지는 한국적 건축미를 살려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술관 건물을 산의 경사에 맞춰 짓고, 주변에 있던 나무를 최대한 살려 옮겨 심어 조경했어요. 한국의 정신문화를 받들고 있는 아름드리나무 기둥을 지나 입구로 들어오면 매표소와 아카이브집(도서자료실) 등이 있고 여기서 한 층 내려오면 지상 1층이죠. 4개의 전시실과 보이는 수리복원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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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8년(1446)에 훈민정음의 창제목적, 자모글자 내용, 해설을 묶어 만든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문화재단

한글의 창제원리와 용례를 담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동안 진본이 공개되는 일이 드물었는데요. 6·25전쟁 피난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 밖으로 나온 적도 없었죠. 이번 전시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이라는 콘셉트로 현대미술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합니다. 훈민정음에 담긴 애민정신을 강조하고 문자에 대한 배리어프리를 확장하고자 청각장애인, 다문화가정, 성인 문해 교육생, 북배경주민 등이 참여한 3점의 미디어 작품이 함께 전시되죠. 신체적 장애, 문화적 차이, 환경적 특수성을 가진 사람들의 훈민정음에 대한 접근성 제고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이른바 훈민정음 합창단이 책 내용을 읽어주는 ‘소리로 지은 집’ 한가운데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만났습니다. “『훈민정음』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됐어요. 당시 간송은 책 거간으로부터 책값이 기와집 한 채 값인 1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아무 소리 않고 1만1000원을 내주며 1000원은 수고비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일제가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던 시기에 『훈민정음』 원본을 구한 거죠. 6·25 피난길에서도 몸에 지니고 다녔을 정도로 애지중지하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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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소리로 지은 집’이라는 콘셉트로 현대미술과의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함께 신윤복의 ‘미인도’ 역시 별도 공간에서 인원 제한을 두고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작품 설명과 안내 대신 특별히 연출된 조명과 음악이 맞이하며 조용히 감상하게 되죠. ‘미인도’ 뒤로 돌아가면 그림 속 제화시와 인장이 제시돼 이해를 돕습니다. 윤 책임은 “누구나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감상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기획”이라고 설명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가만히 그림 속 여인을 바라보며 ‘가슴속은 언제나 사시사철 봄이구나’란 제화시 구절을 음미했어요.
다음으로는 산수·인물·풍속 등 다양한 장르의 회화를 비롯, 음악책 『금보(琴譜)』 등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대변하는 전적(典籍)을 보러 갔어요.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빛나는 대나무 그림이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했죠. “세종대왕의 고손자 이정이 그린 ‘삼청첩’입니다. 검은 비단에 금박 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금니(金泥)로 그린 대나무‧매화‧난초 그림에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힌 석봉 한호를 비롯한 문인들이 글을 썼죠. 이정은 임진왜란으로 팔이 거의 잘리는 부상을 입었는데요. 왜군의 무력에 의한 개인적 아픔과 함께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뛰어난 문화적 역량으로 표현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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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미인도’는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기념전에선 별도의 공간에서 소수 인원이 독대하듯 감상할 수 있다.

김홍도의 ‘마상청앵’ 속 선비처럼 꾀꼬리를 찾아보고, 정선의 ‘풍악내산총람’으로 가을의 금강산을 여행한 뒤엔 길이가 8m나 되어 한번에 보기 힘들었던 심사정의 ‘촉잔도권’을 통해 기이한 절벽과 험준한 바위가 가득한 촉(蜀)으로 가는 길을 걸었죠.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은 전시실 안에서도 2~3겹으로 줄을 서야 볼 수 있었는데요. 단오 하면 떠오르는 그네 타는 여인이 그려진 ‘단오풍정’의 실물을 확인한 세 사람은 작게 탄성을 지르기도 했죠. 윤 책임은 “지금 여러분은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지만 옛날엔 그림을 그렸다”며 옛 선조들의 생활 풍속을 그린 그림, 풍속화를 소개했어요. “봄나들이를 가고 연주회·검무를 즐기고 연인을 만나는 모습 등이 담긴 ‘혜원전신첩’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인스타그램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그림·서예 등 지류 문화유산은 손상되기 쉽죠. 앞서 살펴본 ‘촉잔도권’의 경우 손상된 부분을 수리·복원한 것을 알아볼 수 있게 작업했는데요. 간송미술관이 반세기 이상 축적한 지류 문화유산의 수리·복원 노하우는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통해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하루 2시간 동안 수리·복원 학예사가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궁금한 점은 마이크로 물어볼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그림 뒤에 보강을 위해 붙이는 배접지를 수리하는 것을 보며 배접과 띠지를 활용한 수리법 설명을 들었어요. 윤 책임은 “간송미술관의 문화유산 수리·보존·연구에 대한 오랜 현장경험을 지역사회를 위해 적극 활용, ‘영남권 지류 문화유산 수리·복원 허브’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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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이 반세기 이상 축적한 지류 문화유산의 수리·복원 노하우는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통해 살짝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문화와 예술 전반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자 국가적 유산을 살핀 뒤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걸친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을 보러 갔어요. 글씨뿐 아니라 사군자(四君子)에도 능했던 김정희의 묵란(墨蘭·먹으로만 그린 난초 그림)을 모은 ‘난맹첩’과 추사체의 정수를 담은 서예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죠. 교과서에서 자주 봐 친숙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비롯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도 감상했어요. 정병에 그려진 원앙처럼 귀여운 모양의 ‘청자오리형연적’과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등 섬세하게 제작된 도자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냈죠.
슬슬 다리가 아파질 무렵, 실감영상전시 ‘흐름·The Flow’을 보기 위해 약 38m의 반원형 스크린 앞에 앉았습니다. 정선·김홍도·신윤복·이인문 등 대표적인 조선 화가들의 작품을 재구성해 지나가는 하루의 시간을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이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자 정신없이 빠져들었죠. 영상을 보고 밖으로 나오면 마치 액자처럼 만든 유리창 너머로 물을 활용한 휴식공간이 보입니다. “물가의 정자 뒤로 소나무가 보이죠. 간송의 호에서 착안한 수공간이에요. 한국식 정원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미술관 곳곳 이처럼 외부 풍경을 액자처럼 즐기도록 꾸며 여유롭게 볼만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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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내금강 전경을 화폭에 압축해 그린 정선의 ‘풍악내산총람’을 감상하는 소중 학생기자단.

간송 전형필 선생의 발자취

개관기념전 ‘여세동보’가 열리는 4개의 전시실과 실감영상전시실 외에도 대구간송미술관에는 하나의 전시실이 더 있습니다. 간송의 유작 26건 60점을 통해 그의 ‘문화보국(文化保國·문화로 나라를 지킨다)’ 정신과 생애를 보여주는 ‘간송의 방’이에요. 윤 책임은 “흔히 간송을 수집가로만 알고 있는데, 연구자이자 예술가·교육자로서의 간송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죠.
간송(澗松)은 전형필(1906~1962)의 호입니다. 추운 겨울 깊은 산속에서도 얼지 않고 흐르는 맑은 물과 그곳에 제자리를 지키고 선 소나무와 같이 살라는 뜻으로 위창 오세창(이하 위창)이 지어준 것이죠. 서울 종로에서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간송은 서화가이자 지식인·언론인·독립운동가인 위창과 만나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깨닫게 돼요. 추사학파의 학맥을 이은 위창에게 고증학을 배우고 서법·화법을 수련하며 감식안을 키워 나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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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1906~1962)은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문화보국(文化保國)’ 정신으로 일제강점기 수많은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에선 전국적으로 도굴당하는 등 수만 점의 우리 문화유산이 나라 밖으로 무단 반출되고 있었어요. 간송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우리 문화유산의 수집·보호라는 사명감을 안고 위창으로부터 이어받은 문화보국 실천에 나섭니다. 언젠가 반드시 독립하리라 믿고 나라의 자존심인 문화유산을 지키고 있어야 우리 문화의 맥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 과정에서 극적인 일화도 여럿 남겼어요. 특히 간송은 문화유산 구입 시 금액을 깎는 일도 없었으며, 소유자가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싼값을 부르면 몇 배가 되건 자신이 판단한 가치대로 대금을 지불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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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하면 떠오르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간송이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당시 기와집 20채 값에 달하는 2만원에 구입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훈민정음』 해례본뿐 아니라 절대로 팔지 않겠다던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일본까지 가서 끈질기게 설득해 거액을 주고 가져오고, 영국 귀족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가 수집한 고려청자·조선백자 스무 점에 기와집 수백 채 값을 치르기도 했죠.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일본인 수장가로부터 2만원, 당시 기와집 20채 가격에 구입했다거나, 이후 일본인 수집가가 찾아와 두 배 가격인 4만원에 사겠다고 하니 “이 청자보다 더 훌륭한 자기를 가져오면 바꿔 드리겠소”라고 응수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골동품 구입과 관련 내용을 기록한 노트, 존 개스비 컬렉션을 인수한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하기 위해 쓴 육필원고, 『훈민정음』 해례본 외 9점을 국보로 지정한다는 통지서 등을 보며 그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봤죠.
간송의 방 입구 옆 벽에는 그런 그의 생애가 사진과 함께 굵직한 사건 위주로 연보처럼 소개됐어요. 110여 년 전 찍은 돌 사진, 10대였던 휘문고보 시절 야구부로 활약한 사진 등이 소중 학생기자단의 눈길을 끌었죠. 또 민족 교육의 요람으로 고종의 뜻을 받들어 개교한 보성고보가 경영난에 빠지자 이를 인수한 데 놀라기도 했어요. 그 맞은편에는 보화각에서 간송이 사용한 책상과 유물 수납장, 금고 등이 전시됐는데, 이와 함께 영상을 통해 간송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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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의 방에선 수집가이자 연구자예술가교육자로서 간송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작 26건 60점을 볼 수 있다.

그 옆으로는 ‘이현서옥’이라 하여 간송이 사람들을 만났던 본가 사랑방 이름을 딴 공간이 있는데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쓴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에게 써준 ‘아락서원’ 현액,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삼불 김원룡의 책 표지 글씨로 써준 ‘삼불암’ 등을 볼 수 있었죠. 문화유산 수집·보존은 물론 연구해 그 가치를 밝히는 일 역시 중요하게 여겼던 간송은 이들과 교류하며 한국 최초 미술사학 학술지 『고고미술』을 펴내기도 했어요. 그의 서재 이름이자 간송과 함께 쓴 호이기도 한 ‘옥정연재’ 코너에서는 『고고미술』에 기고한 글 등 연구자로서의 간송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못가의 가을 새벽이라는 의미의 ‘고당추효’ 등 그가 그린 그림을 비롯해 직접 만든 도자기 등을 통해 예술가적 면모도 살펴봤죠.

전인건 간송미술관장과의 만남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지키고 후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려 했던 간송의 문화보국 정신은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간송의 손자이자 서울과 대구 간송미술관장을 역임하고 있는 전인건 관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중구 DDP로 향했죠.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실물로 만났던 『훈민정음』 해례본과 ‘미인도’, ‘혜원전신첩’과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등을 미디어아트로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가 열리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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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건 간송미술관장(왼쪽에서 둘째)과 훈민정음을 미디어아트로 형상화한 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한 최수혁 학생기자와 등가윤·윤근혜 학생모델(왼쪽부터).

전 관장과 전시를 둘러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실제 유물을 봤을 때와는 엄청 느낌이 다르다”며 이러한 미디어전시를 연 의도에 대해 질문했어요. “미디어전시 자체는 새로운 건 아니에요. 아마 학생기자단 여러분도 반 고흐 등 유명한 서양 작품을 활용한 전시를 본 적 있을 거예요. 다만 기존 전시는 서양 IP(지식재산권)를 기반으로 한 게 대다수죠. 우리 문화유산도 훌륭하고 유명한 게 많으니 우리 IP를 기반으로 다양하게 접근하면 좋잖아요. 이를 위해 2014년부터 현대미술과 협업을 늘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미디어전시는 그중 하나예요. 아무래도 미디어와 친숙한 세대에게는 고미술 자체보다는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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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이 전인건 간송미술관장과 함께 간송미술관의 첫 미디어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를 살펴봤다.

앞서 사람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그림을 쫓아다니고 ‘금강내산’ 속 동물들을 찾아보며 자유롭게 작품을 즐겼던 세 사람은 금세 고개를 끄덕였죠. 근혜 학생모델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100개 한정 대체불가디지털토큰(NFT)으로 발행하고 메타버스 뮤지엄도 여는 등 관장님은 디지털에 강하신 거 같아요”라며 “메타버스 뮤지엄에선 어린이들이 좋아할 게임이나 아바타 꾸미기 아이템 같은 것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죠. “물론 가능하다”고 답한 전 관장은 “지난여름 파리올림픽 때 공개한 ‘혜원전신첩’의 조선 마을을 활용한 메타버스 게임이 있어요. 다만 외국인들이 우리 IP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거라 항상 열려있진 않아요”라고 했죠. 당장 해볼 수 없어 아쉬워하던 가윤 학생모델은 “왜 간송미술관을 새로 지었는지, 그 장소로 대구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라며 대구간송미술관의 특별함을 알려달라고 했죠.
“서울에서 봄·가을에만 각각 한 달 정도 전시를 하다 보니 멀기도 하고 오기 힘들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많은 사람이 더 가까이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국토 중심에서 살짝 아래에 위치한 대구를 주목하게 됐죠. 대구는 일제가 우리나라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려고 했던 강제 차관 공세 속에서 일본에 나라가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국민들이 떨쳐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점이에요. 여기에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이기도 하여 민족을 지키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온 점에서 간송미술관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대구에 자리를 잡았죠. 앞으로 1년 내내 상설 전시를 열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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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는 뜻인 김홍도의 ‘마상청앵’. 소중 학생기자단은 말을 탄 선비처럼 꾀꼬리를 찾아봤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수혁 학생기자는 “1940년 수집한 『훈민정음』 해례본 등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오랫동안 잘 보존해왔는지” 궁금해했죠. “문화유산의 보존·수리·복원을 연구하는 학문을 보존과학이라고 해요. 책뿐만 아니라 그림·글씨 등 지류 문화유산은 보관이 어려운 편이죠. 정확한 온도·습도 범위를 맞춰주는 게 중요하고요. 특히 빛을 계속 쬐면 손상돼 어두운 곳에 보관합니다. 전시할 때도 최대한 조도를 낮추긴 하지만 그래도 3달 이상 둘 수 없어요. 12월 ‘여세동보’ 전시가 끝나면 전시했던 유물들은 한동안 쉬게 되죠. 손상된 부분은 수리하고 더 망가지지 않도록 예방 처리도 중요합니다.”
“1971년 시작한 간송문화전을 비롯해 수많은 전시를 했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작품은 무엇인가요.” 가윤 학생모델의 질문에 전 관장은 “아무래도 ‘미인도’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것 같다”고 답했죠. “고미술품 중 여자가 주인공인 그림이 드문데 아름답기도 하죠. 여인의 눈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미스터리예요.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미인도’ 속 여인의 눈이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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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의 풍속화를 모은 『긍재전신첩』의 ‘야묘도추’는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는 한 때의 소동을 병아리를 구하려는 인물들의 표정까지 포착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수혁 학생기자는 “간송 컬렉션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혹은 볼 때 가장 행복한 작품을 꼽아달라”고 했어요. “혹시 좋아하는 동물이 있나요” 되물은 전 관장은 고양이를 좋아한다며 김홍도의 ‘황묘농접’을 꼽았죠. “제목을 풀면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란 뜻인데, 복슬복슬한 노란 고양이가 패랭이꽃을 향해 날아든 검푸른 긴꼬리제비나비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림이라 보고 있으면 흐뭇해져요. 또 단원의 세심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죠.”
“저는 꿈이 배우였다 요즘은 작사가로 바뀌어 시간 날 때마다 노래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운을 뗀 근혜 학생모델은 “관장님 어릴 때 꿈도 미술관장님이었는지” 궁금해했어요. 전 관장은 “물론 아니었다”며 웃었죠. “어릴 땐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수학·과학을 잘하지 못해 포기했어요. 역사를 좋아해서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답니다.” 이어 수혁 학생기자가 “사진을 보니까 할아버지와 상당히 닮으셨어요”라며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든지, 할아버지 간송과의 일화가 있을까요”라고 물었죠. “제가 태어난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라 실제로 뵙지는 못했어요. 할아버지는 큰소리를 내거나 매를 들거나 하는 일이 없으셨고, 잔소리는 일절 하지 않으시면서도 자식들이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조용히 도와주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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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에 쓴 두 폭의 예서 대련 ‘대팽고회’는 가족과의 단란한 일상의 소중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취재를 준비하며 엄마 추천으로 『민족 문화유산 수호자 전형필』이란 책을 읽었어요”라고 말한 근혜 학생모델은 “간송에게 있어 위창처럼 관장님께도 삶을 뒤흔드는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이 있는지, 또 간송과 같은 호가 있는지” 물으며 그밖에 관련 도서를 추천해달라고 청했죠. “간송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신 아버지가 제 스승이자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간송미술관에서 일하며 계속 지켜오신 모든 분도 제 스승이시죠. 효정이라고 새벽 효(曉)자에 훈민정음의 정(正)을 딴 호가 있긴 한데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해서 자주 쓰진 않아요. 간송에 대해 알고 싶은 어린이들이 재밌게 읽을 만한 책으로는 샘터에서 나온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가 있고요. 중·고생 정도라면 김영사에서 펴낸 『간송 전형필』도 소설처럼 볼만합니다. 그밖에 웹툰도 있고 K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도 있으니 한번 찾아보세요.”
가윤 학생모델은 “3대째 문화유산 지킴이라는 건 뿌듯하기도 하지만 엄청 어려운 일 같아요”라며 “앞으로 어떻게 문화보국을 실천하실지 새로운 간송미술관의 포부가 궁금합니다”라고 말했죠. 전 관장은 “문화보국이란 글자 그대로 문화로 나라를, 나라 정신을 지킨다는 뜻”이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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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리고 앉은 어미 원숭이가 아기를 품고 있고 아기는 팔을 뻗어 엄마를 어루만지는 형상이 모자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간송미술문화재단

“K-팝 신드롬부터 K-웹툰·드라마에 빠지고 K-푸드를 찾아 먹는 등 외국에서도 다양하게 우리 문화를 즐기고 있잖아요. 왜 우리 문화를 좋아할까요, 뭔가 우리나라만의 특별함이 있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 우리나라만의 특별함이 가장 많이 담긴 것 중 하나가 우리 문화유산이죠. 이를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건 그래서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일이니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미디어아트 전시도 그 노력 중 하나죠. 오늘 소중 학생기자단 여러분이 미디어전시를 보면서 좋아하고 재밌어했던 것처럼 다른 어린이·청소년들도 재밌게 보겠죠. 언어와 상관없는 논버벌(non-verbal) 전시니까 외국인들도 제약 없이 즐길 수 있고요. 그러면서 그거 원작은 뭐였을까 궁금해하고, 또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흐름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지금의 문화보국이 아닐까 해요. 한류뿐 아니라 고미술 등 우리 문화도 알게 되면 더 재밌다는 걸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우리 문화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게 목표랍니다.”
동행취재=등가윤(서울 창천중 2)·윤근혜(서울 이문초 4) 학생모델·최수혁(서울 한서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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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외부 박석마당에서 포즈를 취한 윤근혜 학생모델과 최수혁 학생기자, 등가윤 학생모델(왼쪽부터). 박석마당에선 팔공산·대덕산이 훤히 보인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교과서에서만 보던 여러 미술품을 눈앞에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또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 외에도 아름답고 귀중한 작품들이 사방에 잔뜩 있어서 볼거리가 정말 많았죠. 또 미술품들을 어떻게, 어떤 것으로 수리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한 ‘보이는 수리복원실’이 좋았습니다. 몇백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현대에 와서 분석해서 원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이를 디지털로 만든 것도, 이를 지켜나가는 것도 다 너무 신기했어요.

-등가윤(서울 창천중 2) 학생모델

대구간송미술관에 가서 그림·도자기 등 다양한 우리 문화유산을 보며 자세한 설명을 들어 좋았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며 옛날과 지금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놀라기도 했죠. 『훈민정음』 해례본 등 옛날 책·그림에는 한자가 많아 한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민족 문화유산 수호자’ 전형필 할아버지를 많이 닮으신 전인건 관장님도 만났습니다. 인자하고 자상하게 말씀해 주셔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됐죠.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본 문화유산이 미디어아트로 변신해서 눈앞에 펼쳐지는 미디어전시는 3D 영화관 같은 느낌도 나고 아름답고 신났답니다.
-윤근혜(서울 이문초 4) 학생모델

대구간송미술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미인도 등 국보·보물을 봤어요. 개인이 그 많은 문화재를 지켜냈다는 것이 신기했고, 저도 하나쯤 가지고 싶기도 했죠. 특히 상감청자운학문매병이 탐나요. DDP에선 미디어아트 전시를 통해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을 즐겁게 체험했습니다. 걸을 때마다 반응하는 센서도 재미있었죠. 간송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있는 간송미술관장님은 대단한 분 같아요. 간송미술관이 여러 군데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수혁(서울 한서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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