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심 처리 90%→123%…조희대 압박 "서초동 시계 빨라졌다" [사법부, 시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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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이 ‘시간과의 전쟁’에 나서면서 법조계에선 “서초동의 시계가 최근 빨라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판 지연 심각성이 대두한 후 재판을 서두르자는 분위기가 조금씩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 농단 사건 항소심 첫 공판은 그런 풍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항소이유 진술이 하루에 2시간씩, 4일은 필요하다”는 검사 주장에 재판부는 “항소이유 진술은 하루에 4시간씩, 2일 하는 것으로 정리하겠다”며 반 토막을 냈다. “우리가 이 사건만 하는 게 아니다”며 첫 재판부터 속도를 낸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 1심은 재판 지연의 교과서로 불렸다. 2019년 2월 기소된 뒤 올해 1월 선고까지 1심만 5년(1810일)이 걸렸다. 공판기일만 290회 열렸고, 그 사이 법관 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돼 갱신 절차에만 7개월을 보냈다. 그랬던 1심과 달리 항소심은 ‘필요하면 듣겠지만 무한정 들을 순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신속 재판 분위기를 잡았다.
법원 내부에서도 “재판 지연이 계속 언급되니 일선 법관들도 문제의식에 공감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고법 부장판사)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취임 후 재판지연 해소를 최우선과제로 내세운 조희대 대법원장의 기조가 일선 재판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내에 ‘속도 내자’는 분위기가 생긴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법원장 재판’의 성과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법원장 재판은 경험이 풍부한 1·2심 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맡는 제도다. 각급 지방·고등법원장이 사건 처리에 나서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37개 법원장 재판부는 지난 3~7월 1·2심 민사본안(합의·단독) 사건 4684건을 배당받아 절반인 2324건(49.6%)을 선고했다. 이 중 법원장 단독 재판부가 2581건을 맡아 1390건(53.9%), 법원장 소속 합의부가 나머지 2103건 중 934건(44.4%)을 판결했다.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 조정 성립과 화해 권고 결정, 소 취하 등이 포함된 수치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도 변화를 체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난달 민사 사건 재판에 들어갔다가, 양측 추가 주장이 없다고 하니 바로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잡아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들어 첫 공판기일부터 선고기일을 예정하거나, 1회 변론에서 심리를 종결하고 바로 다음 기일에 선고하는 사건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같은 변화는 통계에서도 다소 드러난다.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민사본안 사건 기준 처리율은 합의부 기준 2018년 89.7%, 2019년 92.8%, 2020년 92.1%, 2021년 98.8%였다. 4년간 접수된 사건이 처리 사건보다 많아 적체됐다는 뜻이다. 그러다 2022년 135.6%, 2023년 123%로 2년 연속 들어온 사건보다 더 많은 사건을 처리했다.
다만 일부 효과가 나타나곤 있지만 미봉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통계에는 재판부가 처리한 사건의 경중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통계가 나아졌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며 “장기 미제 등 복잡한 사건만 남으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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