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박빚에 훈련계획까지 넘겼다…사채업자에 '멱살' 잡힌 軍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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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간부 암구호 유출 사건 관련 국군방첩사령부·전북경찰청 안보수사1대·전주지검 공조 수사 표. 사진 전주지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3명 구속기소 

소액 급전(急錢)이 필요한 현역 군 간부들에게 군사 비밀인 암구호(아군과 적군 식별을 위해 정해 놓은 말)를 요구한 사채업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인터넷 도박과 가상화폐 투자 실패 등으로 빚을 진 군 간부들은 자칫 북한군이나 간첩이 입수하면 군부대 침입에 악용할 수 있는 중요 정보를 돈을 빌리는 수단으로 썼다.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 한연규)는 2일 "전북경찰청 안보수사1대,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와 공조 수사를 통해 금전 대출 담보로 군사 3급 비밀인 암구호(暗口號)를 수집한 불법 대부 조직 실체를 밝혀냈다"며 "군사기밀 보호법과 대부업법(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채권추심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무등록 불법 대부업체 대표 A씨(37)를 지난달 30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같은 혐의로 대부업체 직원 B씨(27)와 C씨(32)를 각각 지난 7월 29일과 9월 3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국방보안업무 훈령에 따라 암구호는 각 부대가 정해 문답식으로 주고받는 단어로, 매일 변경되고 전화로도 전파할 수 없다. 유출되면 즉시 폐기되고 새로운 암구호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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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장교·부사관 3명, 암구호 유출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대구에 사무실을 두고 전국에 흩어진 군 간부 10명에게 "암구호를 알려주면 대출해 주겠다"고 제안, 이 중 대위 D씨(20대)와 상사 E씨(40대), 하사 F씨(20대) 등 3명으로부터 암구호 등을 받아 보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머지 군 간부 7명은 이들 제안을 거부해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돈은 일부 빌렸다고 한다.

암구호를 넘긴 D씨 등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각각 충남과 강원 지역 군부대에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A씨 등에게 빌린 돈은 개인당 100만 원 안팎이라고 검찰은 전했다.

조사 결과 D씨는 군부대 상황실에 있는 상황판에 적힌 암구호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그 사진을 A씨 등에게 보냈다. D씨가 이런 식으로 유출한 암구호는 모두 7개다. A씨 등은 검찰에서 "E·F씨에게 암구호를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E·F씨가 휴대전화를 없애는 바람에 이들이 암구호를 몇 개나 유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D씨 등은 사채업자 요청으로 암구호 외에도 피아 식별 띠(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군모나 군복에 두르는 띠)나 산악기동훈련 계획서, 부대 내부 조직 배치표 등을 찍은 사진도 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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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대출금 안 갚으면 부대에 알리겠다" 협박  

A씨 등은 인터넷 광고뿐 아니라 불법 대부업자끼리 공유하는 '대출 의향자 명단'을 활용해 전화나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고객과 접촉했다. 대부분 은행이나 저축은행·상호금융 등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저신용자였다고 한다.

이 중 군 간부들에겐 담보 명목으로 암구호 등을 요구한 뒤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부대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거나 가족과 지인에게 대신 빚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군 간부와 사병으로 만기 전역한 A씨 등이 군대 경험을 살려 군 간부들이 불법 추심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도록 이른바 코(약점)를 꿰기 위해 암구호 등 군사 자료를 확보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A씨 등은 총 41명에게 1억8560만 원을 대출해 주면서 최대 연 3만416% 고이율로 1억 원 상당의 초과 이자를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돈을 빌려주고 하루 만에 원금에 상응하는 이자를 갚으라고 하면 연 이자율이 3만%가 넘는다"며 "A씨 등은 채무자에게 통상 연 5000% 이율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법정 최고 이율은 20%로, 그 이상 이자를 받는 것은 불법이다.

이번 수사는 지난 5월 방첩사가 D씨의 암구호 유출 정황을 포착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암구호를 수집한 민간인 대부업자에 대해 전북경찰청에 공조 수사를 요청하며 수사가 확대됐다.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D씨는 지난 6월 11일 제1지역 군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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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3급 군사 비밀인 암구호를 유출한 현역 군 간부들을 수사 중인 국군방첩사령부 입구. 연합뉴스

검찰 "북한 유출 정황은 없어"  

경찰은 탐문 수사와 통신·계좌 압수물 분석을 바탕으로 대부업자 B·C를 체포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전주지검은 B·C씨를 추궁, 이들에게 지시를 내린 자금책이자 윗선인 A씨를 붙잡았다. 검찰과 경찰은 이들에게 압수한 대포폰 33대 정보 등을 분석해 지난 7월 암구호를 누설한 부사관 E·F씨를 추가로 특정해 방첩사에 수사 자료를 이첩했다.

현재까지 A씨 등에게 대공 용의점은 없고, 부대 침입 사건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경·군은 영리 목적으로 군사 기밀을 거래하는 대부업체와 군인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망을 넓힐 계획이다. 이영규 전주지검 인권보호관(부장검사)은 "A씨 등은 암구호 등을 채권 추심 협박용으로 사용했으나, 현재까지 이를 외부로 유출하거나 반국가단체·외국 등에 제공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군 기강 확립과 국가 안보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제도 정립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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