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30년간 한곡 파고든 손민수…“모든 피아니스트의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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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민수(48)의 ‘첫 골드베르크’는 대학 졸업 연주였다. 스승인 변화경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교수가 권한 작품이었다. 서양 음악의 거대한 기둥인 J.S.바흐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건반 악기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그는 20세 남짓할 때 처음 연주했다.
캐나다의 호넨스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음반을 낸 2011년에도 손민수는 주저 없이 이 곡을 골랐고, 음반은 그 해 뉴욕타임스의 명반 톱 25에 들었다. 2007년 캐나다에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75주년 기념 음악회, 2012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골드베르크를 연주했다. 한국에 돌아왔던 첫 독주회(2016년), 2022년 명동성당 연주에서도 그는 이 곡을 선택했다. 32마디짜리 주제를 변형한 30개의 변주곡이 총 80분동안 이어지는 곡이다.
손민수가 거대한 변주곡을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이달 미국과 캐나다의 연주를 거쳐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다. 16일 한남동의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17일 부산, 31일 보스턴까지 한 달 내내 이 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그는 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계속해서 손에 들고 있을까.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손민수는 “이 곡을 다 듣고 나면 인간의 수많은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며 “나의 스승 러셀 셔먼이 해준 ‘죽어있는 영혼과 살아있는 천사들을 위해 노래하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 대학을 졸업할 당시의 골드베르크 연주는 어땠나.
- “당시 나는 엄청난 혈기를 가진 성격이었다. 현란한 음악, 단숨에 사로잡는 작품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이 이 곡을 권했다.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생각도 안 했던 상태였다. 연주는 어려웠고,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 왜 그런 권유를 했을까.
- “음악에는 감정만 있는 게 아니고, 감정을 지적으로 소화한 상태에서 음악의 힘이 더 세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요즘 변화경 선생님을 만나면 ‘그때는 그렇게 바흐·베토벤을 어려워하더니 지금은 그것만 치고 있다’고 농담을 하신다.”
- 그 후로 많은 무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
- “처음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고 느꼈다. 그 후에 한발씩 들어가보니 한없는 깊이가 보인다. 바흐가 남겨놓은 세계는 끝이 없는데 사람이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발견이 된다.”
- 왜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꿈꿀까.
-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의 꿈이자 건반 악기의 백과사전이다. 바흐의 바로크 시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 있다. 10번 변주에서는 모차르트가, 19번에서는 슈베르트가 보인다. 15번은 20세기의 12음계까지 예견하는 듯하다.”
- 방대한 작품을 수없이 반복해서 연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찾아 나가야할 것들이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흐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감정들을 찾아가다보면 진리와 진실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나는 프리즘 같은 존재일 뿐이고 바흐라는 빛을 수많은 컬러로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 연주마다 새롭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 “여러번 했던 곡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미 알고 있는 길로 가려고 한다. 그 길을 보지 않으려고 정말 어렵게 노력을 하는 중이다. 습관을 잊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도전이다.”
- 제자 임윤찬은 중학생 때부터 이 곡을 치고 싶어했고, 스승의 권유로 미뤘다고 했다.
- “바흐의 다른 곡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자리 걸음밖에 안된다. 그래서 바흐의 연습곡인 신포니아를 다 연습했고 프랑스 모음곡, 평균율까지 공부했다. 음악적으로 영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골드베르크를 연주한다는 것은 뒷동산 한번 올라보고 에베레스트 산을 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골드베르크의 장대한 여정은 처음 연주됐던 주제를 한 번 더 연주하며 마무리된다. 이 반복을 어떻게 해석하나.
- “가장 단순한 노래로 시작해 다시 돌아온다. 긴 여행 끝에 돌아오는 것, 또는 삶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경험을 한번 하고 나면 잊히지 않는다.”
손민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지나 바흐의 또다른 거대한 작품인 평균율 전곡 연주에 도전할 예정이다. 한 권에 24곡씩 총 48곡이 들어있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임윤찬은 내년 초부터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에 들어간다. 4월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한 공연장에서 10여년 전 손민수가 했던 것처럼 베베른의 변주곡과 함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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