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술 더 뜬 러시아…"한·미 동맹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 불가"

본문

러시아 외무부가 2일(현지시간) "한·미 동맹이 핵 수준(nuclear level)으로 격상된 상황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 비핵화는 종결된 이슈"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에 대해 정부가 "무책임하다"며 유감을 표하자, 이번엔 한·미 확장억제에 책임을 돌리는 궤변으로 맞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279398649162.jpg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한·미 동맹은 핵 수준"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한·미는 오랜 기간 미국의 전략적 잠재력을 북한을 상대로 공동 사용하기 위한 패턴을 만들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을 기점으로 한·미 동맹은 명실상부한 핵 기반 동맹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강조했는데, 이런 한국 정부의 평가를 교묘하게 틀어 역공을 가한 셈이다.

지난 6월 마련된 한·미의 북핵 공격 대응 가이드라인(공동 지침)은 미국의 '핵' 자산에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을 통합하는 방식이다. 이런 '핵·재래식 통합 작전'은 국제사회의 비확산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러시아의 주장은 마치 한·미가 핵무기를 공유하기로 한 것처럼 호도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 외무부는 또 "한·미가 일본과 함께 '3국(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이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군사 동맹'으로 지칭하는 건 한국 내 여론 분열까지 노려 선전선동을 시도하는 것일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러시아가 그만큼 한·미·일 협력 강화를 경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일 '핵 게임' 시작"

러시아 외무부는 이어 "한·미·일은 북·러가 지난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하기 전부터 3자 관계를 강화하고 '핵 게임'을 시작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러 협력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된다는 지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마치 북·러 밀착이 한·미·일 협력 강화에 따른 대응이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주장으로, 북한과의 불법 무기 거래 등의 책임을 한·미·일에 돌리는 적반하장식 태도로 보일 여지가 있다. '한·미·일이 핵 게임을 시작했다'는 러시아의 주장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3국 중 핵보유국은 미국 뿐으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정례적·방어적 연합 훈련을 실시할 뿐이기 때문이다.

17279398651109.jpg

지난 6월 평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모습. AP.

이날 러시아 외무부의 성명과 관련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한반도 긴장 격화의 책임을 한·미에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은 자체적인 핵우산을 갖고 있다"고 말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추구하는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획득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합법적으로 독점적 핵 보유권을 인정받는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의 일원으로서 자국의 지위를 스스로 위협하는 자기 모순적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외무부 웹사이트에 공개된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에 적용되는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모든 의미를 잃었다"며 "우리에게 이것은 종결된 문제(closed issue)"라고 주장했다. 이에 외교부는 나흘 뒤인 30일 러시아를 향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창설 주도국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저버린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17279398652702.jpg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지난 7월 라오스 비엔티안 내셔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뉴스1.

韓 반박에도 '궤변' 계속 

이와 관련, 러시아가 '북한 비핵화 불가론'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모든 국력을 쏟는 상황에서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 중 하나로 한반도 문제를 악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핵 카드'를 흔드는 러시아가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을 기정사실로 해주며 전쟁에 필요한 포탄 등을 받아내고 있다"며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북·러 협력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을 문제 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3,916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