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서 한 사진사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주변이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자 급하게 뛰면서 자리를 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바논에서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1일 이란의 200발 탄도 미사일 공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상군이 교전 중인 레바논 남부를 넘어 수도 베이루트에 헤즈볼라의 새로운 수장으로 거론되는 하셈 사피에딘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이스라엘군 전사자가 나오는 상황에도 레바논뿐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도 폭격하는 등 전장을 확대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베이루트 국제공항이 위치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해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 로이터통신·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IDF)은 전날부터 이날 새벽까지 수도 베이루트를 포함한 레바논 전역에 있는 헤즈볼라 목표물 200곳을 공습했다. 공습 대상은 헤즈볼라의 관측·테러 기반 시설, 무기고, 테러 요원 등이다.

레바논 국영 언론은 3일 오후 다히예 지역 등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세 차례 이뤄지면서 헤즈볼라가 홍보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국제공항 인근 레이라키 지역을 약 20차례 공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해 레바논 베이루트 국제공항 인근의 한 건물에서 화염이 일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로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와 베이루트 국제공항 부근에선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건물 등이 화염과 연기에 휩싸인 모습이 목격됐다. 이스라엘군은 2일에도 베이루트에서 정밀 공습 작전을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레바논 보건부는 3일 벌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37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CNN은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연일 계속되는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공습은 헤즈볼라 집행위원장인 사피에딘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2일 밤 사피에딘을 향한 공습이 이뤄졌다고 전했고, CNN은 3일 밤부터 4일 새벽 사이 표적 공습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다만 사피에딘이 공습 당시 지하 벙커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기에 사망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하셈 사피에딘 집행위원장이 지난 6월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탈레브 사미 압둘라 헤즈볼라 지휘관에 대한 추모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피에딘은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사촌이다. 헤즈볼라가 창설될 때부터 조직원으로 활동해온 인물로 나스랄라의 뒤를 이어 헤즈볼라를 이끌 인물로 거론됐다. 미국은 2017년 사피에딘을 특별지정 국제테러리스트(SDGT) 명단에 올렸다.

지난 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도시 칸유니스의 한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인해 붕괴됐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은 레바논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공습도 감행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는 4일 서안지구 툴카렘을 공습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 지역 사령관 자히 야세르 압드 알라즈크 오우피를 제거했다. 이스라엘군은 오우피 사령관이 지난달 아테레트 정착촌 인근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 테러를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로 또 다른 테러 공격을 계획하고 있어 공격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공격에 전투기까지 동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서안지구를 드론으로 공격했을 뿐 전투기와 폭격기는 주로 가자지구에 투입해왔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번 공습으로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최소 1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이스라엘의) 학살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긴급한 조치를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일엔 가자지구도 공습했다. 이날 가지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 내 학교가 공격을 받아 8명이 사망했다.

지난 3일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레바논에서 지상전을 벌인 지 4일째가 되면서 이스라엘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헤즈볼라는 3일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벌어진 교전에서 이스라엘군 17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관련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이라면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이스라엘군 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2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내 지상 작전에서 8명의 자국군이 전사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사자 발생이 이어질 경우 이스라엘이 2006년 레바논 침공 때의 ‘악몽’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당시 헤즈볼라에 납치된 자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지만, 34일간의 전면전 끝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당시 이스라엘은 납치된 군인을 구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확전으로 자국군이 상당한 피해를 봤다”며 “이번 작전도 레바논 남부에서 교착상태에 빠지며 장기전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