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광수 부산영화제 이사장 "OTT 개막작, 왜 이슈 되는지 납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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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개막한 제29회 부산 국제영화제의 가장 도드라진 경향은 초청작품의 대중성 강화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각본에 참여한 넷플릭스 사극 액션 ‘전, 란’이 전세계 공개(11일)를 앞두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 최초로 올해 개막작에 선정됐다. 이를 비롯해 넷플릭스의 ‘지옥 시즌2’, 디즈니+의 ‘강남 비-사이드’, 애플TV+ 다큐멘터리 ‘마지막 해녀들’ 등 글로벌 OTT 공개 예정작들이 영화제 초반을 달궜다.
박광수 부산영화제 이사장 #내홍 속 부임 첫 영화제 치러 #영화제 기틀 닦은 원년멤버 #"亞영화 발굴 창구 재점검하겠다"
오픈시네마(야외상영) 부문에선 K팝 다큐멘터리가 처음 초청됐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알엠(RM)에 관한 다큐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CGV가 제작했다. 일각에선 아시아 신진 영화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온 부산영화제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광수 이사장 "4500명 보는 개막작 더 열려 있어야"
개막 사흘째인 4일 부산 해운대구 비프힐에서 만난 박광수 부산영화제 이사장은 오히려 “팬데믹 기간 영화계 자본이 사라지고 OTT가 활성화하면서 양쪽 다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넷플릭스 한국영화는 영화계 인력이 참여하고 상영방식이 극장일 수도 TV일 수도 있는 건데 개막작이 OTT 영화란 게 왜 자꾸 이슈가 되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반문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이 개방된 이듬해인 1992년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가 할리우드 영화를 대거 초청하고,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2022년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노이즈’를 개막작에 선정하는 등 시대적 변화상을 반영한 걸 언급하면서다. “개막작은 일반 상영작보다 더 열려있어야죠. 개막식은 4500명이 들어옵니다. 영화 매니어만이 아니라 1년에 한 편도 안 보는 사람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칠수와 만수’(1988)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등 영화감독으로 출발, 1996년 부산영화제 1회 때부터 3년간 부위원장을 맡으며 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아시아필름마켓(현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등 영화제 기틀을 두루 다졌다. 지난해 원년 멤버 이용관 이사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잇따른 사퇴 속에 정부 지원금 절반 삭감 부담까지 떠안고 이사장에 선임됐다. 부임 이후 “내홍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겠다”면서 '도약을 위한 비전과 방향성'을 약속했다.
"아시아 영화 발굴 창구가 지향점? 재점검 필요"
이사장으로서 영화제를 처음 치르는 그는 관습적으로 해온 것들을 근본부터 되짚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의 발굴 창구를 지향하는 게 과연 맞는지부터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개막작뿐 아니라 K팝 다큐 등 상영작의 대중성이 부각된다는 평가다.
"그동안 아시아 영화를 지향하고 지적인 영화들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개막작을 관습적으로 선정해왔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프로그래머들이 그에 동의해서 대중성을 초청작 방향으로 잡지는 않았다. 요새 신작이 없는 편이어서 한국영화 선정이 쉽지 않았을 거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은 (극장에서) 흥행이 안 된다는 평판은 생각해볼 문제다."
- -지난달 개최 기자회견 때 영화제가 회복해야 할 것으로 조화와 균형, 지휘계통을 언급했는데.
“변화에 맞는 논리를 갖고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가령 개최 초기엔 해외 게스트가 심사위원들 밖에 없어서 개막식 무대에 세웠지만, 해외 게스트가 늘어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또 뉴커런츠(아시아 신인 감독 경쟁부문)에 왜 두 번째 연출작까지 출품 받나. 발굴의 의미는 데뷔작에만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중이다.”
- -아시아 영화 범주를 호주‧뉴질랜드‧하와이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까지 넓혀야 한다는 취지로도 발언했다.
“나 혼자 결정해서 되는 건 아니고 시간이 걸릴 거다. 구체적인 방향을 잡기 위해 7~8월 회의를 많이 했다.”
- -정부 지원이 반 토막 나면서 재정 자립이 중요해졌다. 올해 모든 상영작이 스폰서 기업 광고로 시작하던데.
“북미의 큰 영화제들은 정부 지원이 총예산의 5%에 불과하지만, 기부금 비중이 높고 관람료도 비싸다. 반면 유럽은 중앙‧지방정부 지원이 많다. 부산영화제는 유럽식 영화제를 지향하지만 시스템은 미국식이다. 정부와 발맞춰 키워 가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스폰서 기업을 무시할 수 없다.”
- -영화제의 대외적 위상이 높아진 반면, 아시아 영화 발굴이란 본연의 역할은 약해졌다는 비판도 있다.
“유럽은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가 서로 경쟁하지 않나. 그러니까 발굴을 경쟁하고 비평하고 그렇게 작품과 감독을 부각하면서 월드프리미어(전세계 최초 상영)의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아시아에선 우리가 다른 영화제들과 경쟁하고 있지 않다. 지나치게 월드프리미어에 집착하는 건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제대로 아시아 영화를 지원하고 창구를 열어주고 있는 건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영화제에 틀어도 아무도 비평적 연구를 하지 않고, 국내 개봉도 안 한다면 그게 진정한 의미의 발굴일까. 진정한 아시아 영화의 창이라면 그에 맞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박 이사장은 "한국영화를 칸 국제영화제 등에 출품하는 것은 유럽·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라며 "영화제가 좋은 영화를 시장까지 연결하는 창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부산영화제 기간 개최하는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해외 참여가 늘어나는 것도 “한국영화‧콘텐트 파워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 이사장은 "영화제가 아직도 처음에 내가 만든 포맷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런 식의 영화제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0주년을 맞는 내년 부산영화제가 확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올해 영화제 폐막 후 2년째 공석인 집행위원장 선임부터 속도를 낼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영화를 널리 알리고 마켓을 통해 투자 유치를 돕는 것도 부산영화제의 역할이죠. 한국 영화계에 풍부한 인적 자원, 재능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와 프로그래머들에겐 없는 신선한 능력의 집행위원장을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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