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장례식인가, 잔칫날인가…잠든 임금님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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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부터 20일까지 홍릉·영릉 등 에서 열리는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의 대표 프로그램 ‘신들의 정원’ 공연 장면. [사진 국가유산진흥원]

“왕릉 짓는 석수 장인~ 죽을 고비가 흔하고도 흔하니~ 호랑이한테 먹혀 죽을 뻔~ 돌무더기에 깔려 죽을 뻔…”

풀벌레 울음, 바람 소리도 고요한 경기도 남양주의 홍릉·유릉. 한밤 어둠을 뚫고 오색 조명이 비추자 망치를 든 석수 장인이 터덜터덜 등장해 구성진 소리로 신세 한탄을 한다. 그의 앞에 늘어선 기린·코끼리·사자·해태 같은 석물들이 이런 죽을 고비 끝에 만들어졌단 얘기. 이어 광섬유를 활용한 네온사인 복장의 무용수들이 석물들을 의인화한 군무를 선보인다.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가운데 조선 왕실 국장(國葬) 과정을 약 1시간의 야외 공연으로 풀어가는 ‘신들의 정원’이다. 마지막엔 드론 400대가 날아올라 밤하늘에 장중한 국장 행렬을 표현한다.

오는 11일 개막제(홍릉·유릉)를 시작으로 20일까지 홍릉·유릉, 동구릉, 광릉, 사릉, 영릉(세종대왕릉)에서 열리는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이하 ‘축전’)의 풍경이다. 지난 8일 국가유산진흥원이 마련한 사전 관람행사에서 축전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이 소개됐다. 2020년 시작돼 올해로 5회째인 축전에서 대표 프로그램인 ‘신들의 정원’은 일종의 이야기꾼인 방상시와 초라니의 안내로 왕이 승하한 뒤 왕릉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과정을 총 1시간가량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첫 주말인 12·13일엔 홍릉·유릉에서, 둘째주인 19·20일엔 영릉에서 선보인다.

홍릉은 조선 26대 임금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능이고 유릉은 27대 순종과 순명황후·순정황후가 함께 모셔져 있다. 각각 대한제국(1897~1910)의 1·2대 황제이기도 한 두 왕의 능은 기존 조선왕릉과 달리 명나라 황제릉을 참고해 조성됐다. 가장 큰 차이로 정자각 대신 일자형 침전(왕의 신위를 모신 곳)이 들어섰고 능침 주변에 두는 석물들이 침전 앞에 두 줄로 배치됐다. 축전 연출을 맡은 조형제 총감독은 “최대한 구조물 없이,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조명기를 설치하는 등 공간적 특성을 감안했다”면서 “왕릉이 가진 보편적 가치를 살리면서도 관람객이 색다르게 즐길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왕릉 42기 가운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축전은 이 같은 조선왕릉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기획된 행사로 앞서 조선왕릉문화제로 불리다 올해부터 현재 명칭이 됐다.

축전 기간만큼은 이례적으로 야간개방도 한다. 홍릉의 경우 삼문 통과 후에 만나는 연지(연못)를 중심으로 밤에 특화된 미디어아트 전시를 선보인다. 홀로그램 필름을 활용한 수천 마리의 나비와 한지를 활용한 대형 연잎 등 조형물을 통해 고종이 품었던 대한제국의 희망을 표현하는 식이다. 태조의 건원릉을 포함해 총 9기의 능이 한데 모인 동구릉(경기도 구리)에선 조선 왕들과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퍼포먼스로 풀어내는 ‘동구릉 야별행’이 매일 저녁 3회 진행된다. 대부분 프로그램이 무료지만 ‘신들의 정원’ ‘왕의 정원’ ‘동구릉 야별행’과 힐링 체험 ‘왕릉 포레스트’는 유료 사전예약으로 진행된다.

이날 현장 간담회에서 국가유산진흥원의 박용순 궁능진흥팀장은 “올해 축전은 행사장을 5곳으로 줄이는 대신 국가유산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준비했다”면서 “외국인 참가자를 위해 ‘왕의 숲길 나무이야기’ 등은 영어로도 진행한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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