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The Butter] 경계에서 선하고 끈질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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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만나다 임성택 두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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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서울 중구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임성택 두루 이사장을 만났다. 절반은 로펌변호사로, 절반은 공익변호사로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김용재 더버터 기자

집이 있다. 초등학교 때 놀러 갔던 친구네 집. 잔디가 있는 넓은 마당과 커다란 피아노. 경외심이 들 정도로 웅장하고 평화로웠던 풍경이 떠오른다. 집이 하나 더 있다. 우리 집 갈래? 중학교 때 친구가 말했다. 좋아! 친구 따라서 달동네를 올랐다. 방 하나 딸린 작은 집에 친구네 여덟 식구가 살고 있었다.

임성택 두루 이사장(지평 대표변호사)의 오래된 기억이다. 두 집이 대비를 이루며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다고 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에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생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죠.”

뇌리에 박힌 그 기억이 어떤 작용을 한 게 틀림없다. 임성택 이사장은 법조계에서도 ‘연구 대상’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남들 다 보는 사법시험은 안 보고 NGO에서 일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다가 ‘인천지역주민회’라는 빈민운동 단체에서 사무국장까지 지냈다.

법무법인 지평의 창립 멤버로 대형 로펌을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 머물고 있다. 지평을 기반으로 하는 공익변호사 조직인 ‘사단법인 두루’를 2014년 설립했고, 10년 만에 공익법단체 중 최대 규모로 성장시켰다. 두루 1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은 임성택 이사장을 서울 중구에 있는 지평 사무실에서 만났다.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서

두루가 벌써 10년이 됐군요.
“시간이 빠르죠. 전업 공익변호사 한 명으로 시작해 지금 열두 명이 됐어요. 공익법단체가 국내에 이십여 개가 넘는데 저희 변호사 수가 가장 많아요.”
규모를 일부러 키운 건가요.
“애초에 공익변호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두루를 설립했으니까요. 지평을 만들 때 중요한 가치로 삼았던 게 ‘공익활동을 열심히 하는 로펌이 되자’는 거였어요. 지평의 지원으로 두루가 성장했고, 두루가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지평 변호사들이 참여하면서 공익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죠.”
전업 공익변호사가 전국에 몇 명이나 되나요.
“100명이 조금 넘어요. 아동·난민·이주민·여성·장애인 등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 활동을 무료로 하고 있어요.”
몇 년 전에 들었던 숫자랑 별 차이는 없네요.
“거의 그대로예요. 전체 변호사가 3만 5000명이 넘는데 공익변호사 비율이 1%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1%면 350명인데 지금은 많이 부족하죠. 공익변호사가 아닌 일반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로펌 대표변호사인데 활동하시는 건 거의 공익변호사 수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로펌 변호사들이 저를 되게 특이하게 봐요. 그런데 또 공익변호사들도 저를 특이하게 보죠(웃음). 사실 저한테는 공익활동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예요. 고등학교 때 법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던 첫 마음과 연관돼 있어요. 시작은 늘 ‘그 집’이에요. 어릴 때 갔던 달동네 친구 집. 변호사가 돼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졸업 후에는 왜 NGO에 들어갔나요.
“대학 가서 보니 변호사가 꼭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만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대학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하고는 시민운동과 빈민운동을 했어요. 그때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방법이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다시 사법시험을 쳤고요.
“서른 살에 사시공부를 시작했어요. 둘째가 태어난 후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요(웃음). 1년 반 만에 합격했는데 연수원 성적이 꽤 좋았어요. 판사를 할 수도 있었는데 ‘로펌’을 선택했어요. 아버지가 특히 아쉬워하셨죠. 하루라도 판사로 출근하고 바로 사표 내면 안 되겠느냐고 하실 정도로 서운해하셨어요. 그때도 제 첫 마음을 따라서 정했어요. 시민운동과 빈민운동은 해봤으니 큰 로펌에 가서 경제의 흐름과 사회의 흐름을 배워두는 게 사람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헤쳐 나가는 힘

그는 사법연수원에 다니면서 수어(手語)를 배웠다. 손과 표정으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게 재미있었다. 법무법인 세종에 취직한 뒤에는 청각장애인 단체에 가서 농인을 대상으로 ‘수어 법률상담’을 진행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토요일마다 갔다.

입사 초기라 바빴을 텐데요.
“그때는 공익변호사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어요. 로펌 변호사지만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수어 법률상담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10년 가까이 하게 됐어요. 법률상담이라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분들에게 큰 도움은 못 됐던 것 같아요. 그냥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제가 기운을 주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을 때도 많았고요.”
그때부터 이미 장애인 관련 공익활동을 하셨네요.
“장애 관련 활동을 하다 보면 깨닫는 게 정말 많아요.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한계와 불편함, 어려움, 위기 등을 마주하게 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들리지 않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이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헤쳐 나가는 힘을 얻게 되는 거죠.”
동력이나 에너지 같은 걸 얻게 되는 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후배 변호사들에게 꼭 공익소송이나 공익활동을 꼭 해보라고 해요.”
어째서요.
“변호사들은 사건을 만나면 판례부터 생각해요. 판례가 있으니 안 되겠네. 법이 이렇게 있어서 어려워. 이런 식이죠. 그런데 공익활동을 하다 보면 이렇게 됩니다. 판례가 있어? 그럼 바꿔야지. 안 되면? 헌법재판소 가야지. 법이 그렇다면 법도 바꿔야지. 법을 보는 시야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재미있네요.
“로펌 변호사들은 법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요. 반면에 공익변호사들은 법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공익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기도 해요. 입증이 무척 어렵거든요.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해 언론까지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일반적인 소송에서 언론을 활용하는 법에 대해 배우기는 어렵죠. 법을 보는 태도, 시야, 풀어가는 기술, 이런 걸 총체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일하는 데 도움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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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두루의 변호사들이 사무실 앞 비탈진 골목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두루]

법이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두루의 변호사들과 함께 많은 프로젝트를 하셨죠.
“아동, 장애, 사회적경제, 이주·난민 등의 영역에서 무료 법률 지원도 하고 다양한 입법 활동도 했어요. 10주년을 맞아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쭉 검토해 봤더니 영역은 크게 4개지만 실제로 하는 활동은 수백 가지였어요. 개별 사건들도 정말 많이 해결했는데 정작 사회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저희가 아동학대 사건을 많이 도왔지만, 아동학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잖아요.”
임팩트를 고민하기 시작했군요.
“그동안 두루가 법적 조력과 옹호 활동을 하는 단체였다면, 10주년을 맞아 ‘임팩트 지향’ 조직으로 가야 한다는 새로운 비전을 세웠어요. 대표적인 게 지금 하는 ‘모두의1층’ 프로젝트죠.”
‘모두의1층’은 꽤 오래된 프로젝트 아닌가요?
“9년째 이어지고 있는 프로젝트죠. 원래 두루는 법률 활동만 했어요. 장애인 등 이동약자 누구나 1층 가게에 쉽게 들어갈 수 있게 경사로 설치를 요구하는 ‘모두의1층’ 소송에서 승소했고, 경사로 설치 의무화 대상을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을 이끌었어요. 그런데 시행령이 바뀌어도 경사로 설치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단법인 무의와 함께 가게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법이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바로 변하는 게 아니네요.
“법이 중요하긴 한데 법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게 있어요. 경사로가 그런 거죠. 기업의 참여도 필요하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고 시장도 생겨야 해요. 경사로를 만드는 회사도 생겨야 하거든요. 그런 걸 함께 만들어 나가는 프로젝트죠.”
두루 변호사님들이 더 바빠지시겠네요.
“그렇죠. 지금까지는 익숙한 법률 활동만 하면 됐는데 어려운 도전을 하게 되는 거죠. 기업도 만나고 지자체도 만나야 하고요. 앞으로 좀 힘들어질 거예요(웃음).”

임성택 이사장의 마음에는 달동네 집이 있다.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경계에 서서 그 집을 떠올리곤 한다. “고여 있으면 변하기 어렵습니다. 무수한 사람의 노력과 분투가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아요. 어찌 보면 비관에 빠질 정도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죠. 하지만 머물러 있지 않고 조금씩 시도하다 보면 바뀔 거라고 믿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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