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The Butter] 디지털 기술로 '마음건강'을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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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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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만난 이장우 이사장은 “사회문제가 복잡해질수록 ‘마음건강’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재 더버터 기자

서울 마포대교 위를 걷다 보면 흰색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할 수 있다. 수화기만 들면 365일 24시간 자살 예방 상담사와 연결되는 핫라인 ‘SOS 생명의전화’다. 지난 2011년 설치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상담 수는 9838건에 이른다. 투신 직전의 자살 위기자를 구조한 건수는 2203건이다.

생명의전화 운영기관인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최근 전통적인 ‘자살예방’ 사업을 넘어 ‘마음건강’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업 방식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상은 성인에서 청소년으로 넓히는 식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장우 이사장은 “자살 방지의 최전선에 있는 생명의전화를 10년 넘게 지속해 왔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사각지대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상담자의 저연령화가 대표적인데 아날로그 사업으로는 채우지 못한 ‘연령의 사각지대’를 디지털 플랫폼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령의 사각지대’라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자살이라고 하면 그간 어른들의 이야기로만 여겨졌어요.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10대 청소년부터 2030세대 청년들까지 마음의 짐이 있어요. 우울감이랄까, 비행복감을 느끼는 인구가 전 세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실제 자살 시도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음건강을 챙겨야 할 아이들이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죠.”
원인이 뭘까요.
“유튜브만 봐도 정보가 쏟아집니다. 소셜미디어에는 나와 비교되는 대상이 너무 많죠. 옛날이면 10년에 걸쳐 얻을 정보를 하루에 다 받아버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콘텐츠에 워낙 많이 노출되다 보니까 예전이면 그냥 지나갈 문제들이 각성되는 거 같아요. 이렇게 사회가 달라졌는데 정신적인 대비는 전혀 안 되는 거죠.”
방법이 있나요.
“대응은 선제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선 좋은 감정을 확산시키는 겁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무척 중요한 지점입니다. 우리 사회는 우울감이 일상화됐어요. 누군가 먼 산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저 사람 우울한가 봐’라고 할 정도죠. 그래서 나쁜 감정은 팔고, 좋은 감정을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감정거래소’ 같은 거죠.”

재단은 지난해 11월 청소년 마음건강 캠페인으로 디지털 플랫폼 ‘감정가게’를 오픈했다. 간단한 게임으로 좋은 감정을 공유하고, 나쁜 감정은 마음껏 표출해 팔아버릴 수 있다. 오픈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160만 명이 다녀갔다. 청소년 대상 24시간 상담 애플리케이션 ‘다들어줄개’에서 이뤄진 상담은 34만 건이 넘는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대학생 멘토가 청소년을 상담하는 ‘힐링톡톡’도 20만 명이 이용했다.

상담을 요청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네요.
“‘다들어줄개’를 만든 게 2018년이에요. 당시에도 ‘청소년 상담은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우려가 컸는데, 출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이용자가 유지되고 있어요. 지금은 청소년 상담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민이 많던가요.
“아무래도 대인관계 문제가 전체의 30% 정도로 가장 많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 특히 고민이 많아요. 그다음으로 학업 스트레스, 가족과의 갈등 순이에요.”
대면이나 전화 상담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을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청소년들은 대면이나 전화 상담보다 온라인 공간에서 더 편하게 소통합니다. 특히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에 익숙하고 오히려 대면 상담을 불편해하죠.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공간이면서,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접근성이 좋은 공간이 바로 디지털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관에서 발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먼저 찾아오는 장점도 있어요.”
정부 부처와도 협력한다고 들었습니다.
“청소년 대상의 ‘다들어줄개’는 교육부와, 전 국민 대상의 상담 프로그램 ‘마들랜’은 보건복지부와 협업하고 있어요. 민간과 정부가 대등한 입장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한 대표 사례입니다. 민간의 전문성과 정부의 지원으로 국민의 마음건강을 돌보는 일은 자살을 막는 선제적 조치입니다.”
오늘도 생명의전화가 울릴까요.
“매년 400건 내외 상담이 이뤄집니다. 하루에 한 번꼴이니까 오늘도 누군가 수화기를 들지 않을까요.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혹자는 ‘몇 명 살렸냐’면서 숫자로 이야기하지만,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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