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The Butter] 개의 체온은 사람보다 1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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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개발자가 된 수의사' 이환희 포인핸드 대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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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희 포인핸드 대표는 ‘사지않고 입양하는 반려동물 문화’를 11년째 만들어오고 있다. 김용재 더버터 기자

# 초짜 수의사

2013년 봄, 스물일곱 청년 이환희는 케이지 안에 있는 포메라니안 품종의 노령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지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었다. 평소처럼 품에 안고 쓰다듬어 달라고 재촉했다.

이환희는 수의대를 졸업하고 막 자격증을 딴 ‘초짜 수의사’였다.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에 출근한 지는 2주쯤 됐다. 3년간 공중방역수의사로 병역 대체복무를 할 예정이었다. “출근 첫날 깜짝 놀랐어요.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냄새가 많이 났고 시설도 열악했어요. 층층이 쌓인 케이지 안에는 40마리 정도의 유기견이 있었는데 대부분 불안한 모습이었죠.”

한두 마리의 동물이 매일 보호소에 들어왔다. 그는 신고 접수부터 유기동물 관리 전반을 맡았다. 포메라니안은 보호소에 와서 정이 든 강아지였다. 노령견이었지만 비교적 건강했다.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했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호소 팀장이 그를 불렀다. 공간이 부족하니 동물들을 안락사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명단에는 포메라니안도 포함돼 있었다. 그때만 해도 무슨 상황인지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케이지 앞에 서자 실감이 났다. 떨리는 손으로 케이지를 열고 포메라니안을 꺼내 품에 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그에게 전달됐다. 개의 체온은 사람보다 1도 정도 높다.

처치실 냉동고에는 비닐에 쌓인 유기동물 사체가 쌓여 있었다. 한 번씩 트럭이 와서 무게를 달아 비용을 받고 처리해 주는 식이었다. 처치실이 가까워지자 포메라니안의 몸이 뻣뻣해졌다. 사체 냄새를 맡은 것이다. 무언가를 직감한 작은 몸은 더욱 경직됐다. 꼬리가 말리고 오줌도 찔끔 쌌다. 수술대 위의 포메라니안이 숨을 거두는 데 걸린 시간은 10초 남짓이었다.

퇴근 후 침대에 몸을 뉘었다. 처치실에 있던 직원들의 덤덤한 표정이 떠올랐다. 눈물이 쏟아졌다. 베개가 다 젖어서 뒤집어 베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유기동물은 매일 들어온다. 15일이 지나 주인을 못 찾은 강아지는 다음에 들어올 동물에게 케이지를 내어주기 위해 안락사된다. 사람이 만든 이상한 시스템 안에서 동물의 삶과 죽음이 기계적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 비밀 작업을 시작하다

이튿날 이환희는 평소와 다름없이 보호소에 출근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겉으로는 잘 적응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비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말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포메라니안은 충분히 더 살 수 있었고 삶의 의지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렇게 쉽게 안락사를 결정하는 게 충격이었죠.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냥 내 눈앞에 있는 동물들이라도 구하고 싶었어요.”

보호소의 유기동물이 안락사를 면하려면 누군가에게 ‘입양’이 돼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유기동물 정보가 담긴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이 홍보가 안 된 탓에 홈페이지 접속자가 없었고, 입양 문의도 거의 없었다. 동물을 무책임하게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유기동물을 관리하는 구조와 시스템 자체가 더 문제였다.

그는 유기동물에 대해 알리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부 시스템에 있는 유기동물 정보를 스마트폰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만들면 입양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부터 코딩(coding)을 했던 경험이 있어 자신 있었다.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그런 앱을 누가 쓰냐’는 반응이었다.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개발을 시작했다.

한 달 반 만에 초기 버전이 탄생했다. 보호소 유기동물에게 가족을 찾아주는 ‘포인핸드(Paw in Hand)’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반려인 커뮤니티에 앱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안락사되는 유기동물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 특히 유기동물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이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꼭 필요한 기능들을 하나하나 업데이트했다.

“우려와 달리 1년 만에 사용자 1만 명을 넘겼어요. 오히려 너무 빨리 늘어 문제였죠. 조립해서 만든 서버용 컴퓨터가 늘어난 사용자를 감당 못 하고 뻗어버렸거든요. 3일 동안 잠도 안 자고 컴퓨터와 씨름했어요. 배우고 연구하면서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거의 8년간 모든 걸 혼자서 개발했습니다.”

2024년 10월 현재 포인핸드 앱 사용자 수는 72만 명. 누적 다운로드 수는 560만 회에 달한다. 국내 유기동물 입양의 90%가 포인핸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10만 마리 넘는 유기동물이 포인핸드에서 가족을 찾았다. 바꿔 말하면 10만 마리가 안락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셈이다.

# 영화 한 편에서 시작된 일

어쩌면 이 모든 일이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수의대 2학년 때 그는 엉뚱하게도 코딩에 빠졌다. 마크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페이스북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스토리에 매료됐다. 중고 사이트에서 C언어 교재를 구매해 독학으로 공부했다. 재미있었다. 1년 휴학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프로그래밍만 팠다.

복학 후 ‘앱 창작터’라는 수업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강했더니 모두 공대생이었다. 수의학과 학생을 외계인 보듯 했다. 오류 없이 잘 짜인 코드로 교수님께 칭찬을 받으면서 한 번 더 주목을 받았다. 운전 중에 음성으로 문자를 보내는 앱을 만들어서 프로젝트 과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릴 때 저는 유독 동물을 좋아했어요. 그 외에는 평범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죠. 대학교 때 코딩을 하면서 처음으로 ‘몰입’이라는 걸 경험했고, 그게 수의사라는 제 직업과 만나 특별한 일을 하게 됐어요. 제가 코딩을 몰랐다면 포인핸드도 없었겠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평범한 수의사로 살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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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희 포인핸드 대표

수의사, 개발자, 그리고 사회혁신가 

이환희 대표는 2022년 ‘브라이언 펠로우’에 선정됐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설립한 공익재단 브라이언임팩트가 운영하는 사회혁신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혁신가를 선정해 매월 300만원의 제약 없는 활동비를 최대 4년간 지급한다. 사회문제를 더 잘 해결하도록 네트워크와 인프라도 지원해준다.

브라이언 펠로우 송년행사에 참석한 이환희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대학생 때 코딩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따라했던 게 카카오톡 플랫폼이었다. 이런 걸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김범수 창업자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어요. 포인핸드를 만들면서 느꼈던 걸 솔직하게 이야기했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IT기술의 도움이 필요한데, 사회혁신가 대부분이 기술을 잘 모른다는 점에 대해 설명했어요. 혁신가들에게 ‘돈’을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기술’을 지원해 주면 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서로 크게 공감했어요. 개발자로서 뜻깊은 시간이었죠. 그리고 이 대화 내용이 얼마 뒤 카카오임팩트의 실제 프로젝트가 됐습니다. 개발자와 사회혁신가를 연결해주는 ‘테크포임팩트’ 사업이죠.”

혁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유기동물이 보호소를 통해 구조된다. 지난 1년간 입양된 유기동물 수는 2만5000여 마리. 포인핸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전보다 입양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수가 안락사 되거나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자연사한다.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이환희 대표는 2023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포인핸드 입양문화센터’를 열었다. 지난 9월 26일 찾아간 센터에서 ‘살랑이’를 만났다. 꼬리를 쉬지 않고 흔들어서 살랑이. 사람을 좋아하는 살가운 성격의 믹스견이 입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랑이는 서너 달 전 길거리에서 태어났다. 최근에는 버려진 개보다 살랑이처럼 길에서 태어나 방치됐다가 구조되는 개가 훨씬 많다.

유기동물보호소는 대개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보호소를 짓고 싶어도 혐오시설 이미지 때문에 주민 반대에 부딪힌다. 접근성이 좋지 않다 보니 보호소 동물들에 대한 오해는 더 커진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센터를 마련한 이유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유기동물은 성격이 어둡다, 품종 있는 동물이 더 좋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이환희 대표가 살랑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어때요? 믹스견이라도 너무 예쁘지요?”

입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양을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유기동물을 입양해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이 채 20%가 안 된다는 게 이환희 대표의 설명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유기하거나 잃어버린다.

“사진부터 바꾸십시오. 구조 당시의 꾀죄죄한 모습, 케이지에 갇힌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아무도 입양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지난해부터 이환희 대표는 지역의 보호소들을 방문해 입양을 홍보하고 상담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강릉시 보호소의 경우 입양률이 2배로 늘었다. 입양 상담 전에 미리 ‘신청서’를 받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즉흥적인 입양으로 인한 파양을 막기 위해서다. 강릉·군산·제주·남양주·사천·상주 등 전국 곳곳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힘들지 않냐고요? 저는 이 일이 너무 흥미롭고 보람 있습니다. 즐겁지 않았다면 10년 넘게 지속할 수 없었을 거예요.”

혁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을 살리고자 했던 수의사의 신념, 개발자로서의 분투. 그의 곁에 시간이 쌓이고 있다. 살랑이가 이환희 대표의 얼굴을 핥는다. 개의 체온은 사람보다 1도 높다. 살아있는 동물만이 그 체온을 가질 수 있다.

중앙일보 공익섹션 더버터(The Butter)
취재팀 : 김시원 편집장, 문일요 취재팀장, 최지은·박선하 기자
공익사업팀 : 이영은 매니저, 박찬주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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