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이랑GO]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금속활자본의 고향은? 바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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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심심해~”를 외치며 꽁무니를 따라다닌다고요? 일기쓰기 숙제하는데 ‘마트에 다녀왔다’만 쓴다고요? 무한고민하는 대한민국 부모님들을 위해 ‘소년중앙’이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말 아이랑 뭘 할까, 고민은 ‘아이랑GO’에 맡겨주세요. 이번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직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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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이 금속활자판으로 복원된 『직지』를 살폈다. 3만여 개의 금속활자가 78개의 판을 구성한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가다 

인류는 책을 통해 수천 년 동안 후대에 지식을 전했지만, 평범한 민중이 책을 자유롭게 읽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필요했다. 책을 빠르고 정확하게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주역 중 하나인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 중 가장 오래된 게 바로 고려시대에 간행된 『직지』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직지』의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의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찾아 『직지』의 탄생 과정과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 금속활자 제조법 등을 알아봤다.

청주고인쇄박물관 로비에는 거대한 책 모양으로 78개의 금속활자판이 전시됐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전통 주물 방식인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한 3만여 개의 금속활자를 조판해 만든 『직지』 활자판이다. 이를 종이에 찍으면 『직지』가 만들어진다. 관람객이 활자판을 마주 보고 선 기준으로 왼쪽이 『직지』하권, 오른쪽이 상권이다.

사실 『직지』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란 제목을 줄여 부르는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이라고도 한다. 백운은 『직지』를 편찬한 고려 말 경한(1298~1374) 스님의 호, 화상은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초록은 중요한 부분만 발췌했다는 뜻이며, 불조는 석가모니 등 부처와 선사·조사 등 큰스님을 뜻한다. 직지심체는 ‘참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직시하면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불교 용어, 요절은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뜻한다. 즉, 경한 스님이 부처와 큰스님들의 가르침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모은 책이라는 뜻이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는 현재는 하권만 남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선 그 복원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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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온 학생기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 하권의 표지에 있는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폈다.

청주는 『직지』의 고향이다. 『직지』 하권 마지막 장에 보면 ‘선광 칠년 정사 칠월 청주목 외 흥덕사 주자 인시’라고 적혔다.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했다는 의미다. 흥덕사의 위치는 1985년 청주시 운천동 866번지 일대 발굴조사에서 “서원부 흥덕사(書原府 興悳寺)”라고 새겨진 쇠북(금구)과 “황통 10년 흥덕사(皇統 十年 興悳寺)”라고 새겨진 승려의 공양그릇인 발우가 발견되며 밝혀졌다. 1984년 12월부터 한국토지공사가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진행된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가 거둔 성과다. 흥덕사지는 1986년 5월 7일 사적 제315호로 지정됐으며, 1987~1991년 절의 본당인 금당과 3층 석탑을 복원하고 잔디를 심어 터를 정비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부근이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고려의 금속활자는 『초조대장경』『재조대장경』 등 각종 불경과 대장경 간행 등 거대한 국가사업을 뛰어난 목판 인쇄술로 이뤄낸 고려의 저력이 금속활자에도 발현되며 탄생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이 바로 『재조대장경』을 만들 때 사용한 목판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역시 우리나라 문화유산이다. 8세기 초 신라가 불국사를 중창하면서 석가탑을 세울 때 봉안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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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고인쇄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만든 복제본이 전시돼 있다.

1200도 이상 온도에서 구워야 탄생하는 청자가 고려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금속활자 제작에 필요한 불을 다루는 기술은 당시 고려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금속활자를 만들고 사용할 여건은 충분히 갖춰진 상태였던 것. 여러 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던 13세기 고려인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의 확산과 공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금속활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성숙한 문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흔히 금속활자 하면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술의 혁신자라고 불리는 독일인 사업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떠올린다. 그는 1440년대에 납으로 만든 인쇄용 금속활자를 틀에 하나하나 심어서 조판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기존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필사나 목판 인쇄보다 시간과 자원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 대량의 인쇄물이 저렴하게 공급됐고, 많은 사람이 책을 사서 읽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지식과 정보가 과거에 비해 빠르고 넓게 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가 인쇄한 서적 중 현존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42행 성서』는 『구텐베르크 성서』로도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인쇄술 혁신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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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를 통해 위치가 확인된 『직지』의 탄생지인 흥덕사는 금당과 석탑이 복원됐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주변에 있어 함께 돌아보기 좋다.

1377년 간행된 『직지』는 1455년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내구성도 우리나라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뛰어나다. 우리나라 금속활자는 주로 구리와 주석(朱錫)의 합금인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녹여야 해 가공이 어렵지만 한 번 만들면 오래 쓸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재료인 납은 360도만 넘어도 녹일 수 있어 가공이 쉽지만, 우리나라 금속활자에 비해 금방 마모되고 흠집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사실 『직지』가 우리나라 최초 금속활자본은 아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전시실에는 불교서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금속활자본을 1239년 목판으로 다시 인쇄한 목판본이 있다. 즉, 고려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책을 알 수는 없지만 『직지』가 탄생한 1377년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고려인들이 금속활자를 사용했음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직지』는 왜 프랑스에 을까. 1896~1899년 주한 프랑스 공사로 근무한 꼴랭 드 플랑시가 『직지』 하권을 수집했고, 1900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했다. 1911년 경매에 나온 『직지』 하권을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가 180프랑에 구입했고, 그의 유언으로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1945년 8·15 광복과 1950~1953년 한국전쟁, 전후 수습 등으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직지』 하권의 존재는 1972년이 되어서야 고(故) 박병선 박사에 의해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 중이던 박 박사는 서고에서 『직지』 하권을 찾아 연구했고, 1972년 개최된 유네스코 주관 책 전시회에서 『직지』 하권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 공식 인정받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직지』 하권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4일 세계적인 수준의 중요성을 지닌 기록유산의 보존을 장려하기 위해 선정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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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면에 흥덕사라는 명칭이 새겨진 승려의 공양그릇인 발우. 1985년 발굴 조사에서 발견됐으며 흥덕사는 1377년 『직지』를 간행한 곳이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는 하권만 남아있지만, 박물관 로비에 있는 78개의 『직지』 금속활자판은 상·하권을 다 갖춘 3만여 자다. 『직지』는 금속활자로 간행된 1년 뒤인 1378년 여주 취암사에서 목판본으로 한 번 더 간행돼 상권의 내용을 알아낼 수 있었다. 78개 판에 담긴 3만여 자의 금속활자를 2011년부터 5년 동안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함께 복원한 주인공, 바로 임인호 활자장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는 매주 금·토요일에 임 활자장의 금속활자 주조과정 시연을 관람할 수 있다.

전통적인 금속활자 제작 방법은 주물사로 불리는 모래·점토를 활용한 주물사주조법, 벌집의 찌거기를 가열·정제한 밀랍을 활용한 밀랍주조법 등이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많이 사용됐고, 『직지』를 찍어낸 금속활자를 주조한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밀랍주조법이다. 『직지』 하권에 인쇄된 활자들이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임 활자장이 복원한 금속활자 역시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전시실에는 밀랍주조법으로 금속 활자를 만드는 과정이 모형과 영상 등으로 자세히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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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호 활자장이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주물사주조법으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법을 시연했다.

『직지』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금속활자 기술은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책을 통한 빠른 지식 전달이 가능해지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지방에서도 인쇄 활동이 활발해졌다. 관청은 물론 사찰·서원·향교·문중·개인에 이르기까지 간행 주체도 다양했다. 그만큼 간행된 책의 종류도 지식을 담은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부터 개인 문집·족보까지 광범위했다.

특히 조선 후기 한글 보급이 확대되면서 일상생활에 유용한 의학지식을 담은 의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지리를 기록한 지리서, 어휘를 모은 사전, 사회 풍자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소설류의 책들도 간행·판매됐다. 북송의 사마광이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후 960년까지 1362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인 『자치통감』, 1299년 중국 원나라 주세걸이 편찬한 수학책으로 도량형·원주율·분수·제곱근 등 여러 수학 지식이 수록된 『신편산학계몽』, 조성하가 1865년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시문 등을 모아 엮은 책으로 금강산 일대의 산수명의 유래, 사찰과 명승의 경계와 특징 및 위치 등을 상세히 수록한 『금강산기』 등을 보면 인쇄술의 발전이 곧 민중에게 여러 분야의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책 인쇄에 금속활자만 사용된 건 아니다. 고려·조선에서 금속활자는 목판인쇄와 함께 사용됐다. 목판 제작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인쇄할 내용에 해당하는 글자를 판에 하나씩 조립해야 하는 금속활자에 비해 쉽게 대량 인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즉, 목판인쇄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수요가 있는 책의 경우 유리하고 금속활자는 여러 종류의 책을 소량 인쇄할 때 유용했다. 금속활자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책들은 목판인쇄를 통해 대량 간행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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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는 낱개의 금속활자를 자유자재로 조판할 수 있기 때문에 페이지 전체를 조각해야 하는 목판 인쇄에 비해 새로운 서적 제작 속도가 빠르다.

조선 후기까지 인쇄의 중심축이었던 전통 금속활자 인쇄술의 전성기는 1800년대 말 근대 인쇄술의 도입과 함께 서서히 막을 내렸다. 1883년에는 정부가 신문 발행과 출판 업무를 맡아보는 관청인 박문국을 설치하고 인쇄기계와 납활자를 수입해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를 간행했다. 이후 민간에서도 광인사 등 근대 인쇄술을 사용하는 인쇄소가 생겨났다. 납활자도 조판 과정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전통 금속활자 인쇄와 같지만, 사람이 아닌 기계가 인쇄하므로 속도가 훨씬 빨랐다. 납활자를 이용한 근대식 인쇄술은 1990년대 컴퓨터를 활용한 제작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컴퓨터·스마트폰 등으로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손쉽게 지식을 공유하기까지는 목판 인쇄가 금속활자 인쇄로 발전했듯, 여러 과정이 있었다. 즉,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등장은 지식의 전파 속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현대 인터넷의 등장과 비견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직지』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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