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극초음속 개발자도 감옥 갔다…푸틴 '스파이 의심병'에 과학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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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고의 방위산업 엔지니어로 꼽히는 알렉산더 쿠라노프(76). 극초음속 시스템연구소 소장이던 쿠라노프는 현재 극초음속 미사일 체계의 원천이 된 발사체 개발에 기여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4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법원에서 반역죄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과학적 발전에 관한 기밀을 외국 특수 기관에 유출했다"는 죄목이었다.

#지난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 소속 이론·응용역학연구소의 알렉산드르 시플류크 전 소장(58)은 반역죄로 15년형을 받게 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플류크는 중국의 한 과학 포럼에서 중국에 비밀 자료를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그는 "자료는 기밀이 아니고 온라인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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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줄)이 2024년 10월 2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드네보 산업단지를 방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처럼 러시아에서 최근 6년간 극초음속 분야 과학자 12명이 '반역죄' 명목으로 체포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일 보도했다. 독일 등 외국에 러시아 기술을 넘기는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게 이유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반역 사건은 국가 기밀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받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과학자들을 스파이로 낙인 찍고 체포하면서 과학계가 공포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스파이 색출 분위기는 더 심해졌다고 한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러시아 인권 단체 '메모리얼'의 세르게이 다비디스는 WSJ에 "러시아는 스파이 광풍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 "푸틴, 극초음속 미사일 애정"

왜 극초음속 과학자가 타깃일까. WSJ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 강점이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 분야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술 공개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면서 "푸틴은 러시아가 계속 이 분야 선두를 차지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과학 기술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푸틴의) 편집증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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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반역죄로 14년형을 언도받은 과학자 아나톨리 마슬로프. X(옛 트위터)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 5(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날아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최신 미사일로 기존 미사일방어체계(MD)를 무력화시키는 기술로 평가된다. WSJ은 "극초음속 미사일은 러시아가 세계를 선도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라고 평했다. 미국·유럽이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러시아엔 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각에선 러시아 보안 당국이 "러시아의 과학적 성과가 너무 탁월해서 전 세계 스파이가 이 기술을 훔치려고 한다"는 믿음을 푸틴에게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과학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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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초음속 분야 전문가인 알렉산더 쿠라노프는 외국 기관에 기술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X(옛 트위터)

"1930년대 스탈린 때도 과학자 박해"

최근 공포 분위기는 '러시아 우주개발의 아버지'인 세르게이 코롤료프, 로켓 엔지니어 발렌틴 글루슈코 등이 1930년대 스탈린 통치 기간 박해를 받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전략 폭격기 Tu-95의 설계자였던 안드레이 투폴레프도 반역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문제는 러시아에서 극초음속 분야에 적용 가능한 기초 과학을 연구해도 언제든 체포돼 수년간 구금될 수 있단 점이다. 과학자 중에는 무기·미사일 개발 경험이 없지만 단지 연구 분야가 극초음속 무기에 적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잡혀간 경우도 있다. 신문은 "체포와 구금이 두려워 의미 있는 연구를 하지 않으면 러시아 과학계의 발전이 막힐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반역죄에 몰린 러시아 과학자 3명의 변호를 맡았던 예브게니 스미르노프 변호사는 WSJ에 "외국 연구진과 협업할 수 없고, 해외 학회에도 갈 수 없다면 과학도 발전할 수 없다"면서 "공포 분위기가 러시아 과학자들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러시아 당국이 정부 비판자들을 표적 삼아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WSJ은 지적했다.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서 국가 반역죄, 간첩 행위, 기밀 누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 수는 역대 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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