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절친' 극우 독재자, 원래 민주투사였다…2010년 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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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정말 강한 지도자(very tough guy)”

지난 7월(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신과 친분 깊은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제외하면 이날 연설에서 언급된 유일한 외국 지도자였다. 그는 같은 달 트럼프의 별장에 초청받기도 했다.

“예쁜이 안녕(Bella Ciao)”  

이달 초 유럽연합(EU) 순회의장에서 이런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들을 조롱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다. 진보 성향 EU 의원들이 친러·친중 행보로 유명한 그를 조롱하러 이 노래를 부르자, 그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의원들이 맞서면서 EU 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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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유럽연합(EU) 의장을 맡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61) 총리. AP=연합뉴스

‘유럽의 이단아’, '독재자계 아이돌' 등 다양한 별명이 붙은 오르반 빅토르(61) 헝가리 총리 이야기다. 오르반이 EU 의장국 순번에 따라 지난 7월부터 6개월간 EU 의장을 맡게 되면서 그의 극우 민족주의적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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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하지만 “독재자(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라고 비난받는 그도 알고 보면 한때 “독재 종식”을 외쳤던 '민주 투사'였다. 헝가리 출신 언론인은 BBC에 “촉망받던 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민주주의 종말의 주범이 됐다”고 평했다. 독재에 저항하던 민주 투사가 극우 민족주의 독재자가 된 그의 ‘반전 이력’을 살펴본다.

작은 시골서 어린 시절…공산당원 父 폭력 등 

오르반은 1963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인근의 펠추트(Felcsut)에서 태어났다. 당시 주민이 2000명도 되지 않던 작은 마을로, 수돗물 공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시골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산당원, 어머니는 교사였다.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오르반은 어린 시절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성장기에 그는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오르반은 198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년 두 차례씩 얻어맞았다. 아버지는 때릴 때마다 고함을 지르곤 했다”며 “나는 이 모든 나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2년 간의 군 복무 뒤 외트뵈시 로란드대에서 법학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소심했던 성격도 이 시기에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오르반의 전기 『오르반 빅토르』에 따르면 그는 군 복무 이전의 자신을 공산 정권의 “순진하고 헌신적인 지지자”였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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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16일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에서 당시 학생이자 피데스 창립 멤버였던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 내 소련군 철거와 자유 선거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우리의 힘을 믿는다면 공산주의 독재를 끝낼 수 있다”

오르반의 정치인생은 1989년 6월 16일 시작된다. 그날 26세 오르반은 25만명의 대중이 모인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그는 당시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청년민주동맹 피데스(Fidesz)의 창립 멤버였다. 1956년 소련에 맞선 민주화 운동에서 숨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서 행한 이 연설에서 오르반은 자유 선거와 소련군 철수를 요구했다.

BBC는 당시 오르반의 연설로 “자유 선거와 헝가리의 독립을 꿈꿔온 국민의 열망이 깨어났다”고 전했다.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대변한 이 연설로 오르반은 스타가 됐다. 이후 그가 이끌던 피데스는 중도 좌파 성향의 정당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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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총선에 나선 오르반이 단상에 올랐다. AFP=BBC

1990년 오르반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런데 그가 이끄는 피데스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해 총선에서 386석 중 21석, 이어 94년 총선에선 20석에 그치는 등 부진을 겪었다.

그러자 오르반은 놀라운 ‘반전 카드’를 꺼냈다. 중도 좌파였던 당 노선을 중도 우파로 바꾼 것이다. 정치학자 졸탄 라크너는 BBC에 “자유주의-사회주의 연합에 의해 통치되던 시절인 90년대 중후반 오르반은 정치적 성공을 위해 반자유주의적 세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르반과 피데스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피데스는 98년 총선에서 의석 과반(148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제1당이 됐다. 당시 35세였던 오르반은 ‘유럽 최연소 총리’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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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즐겨하던 오르반 총리의 1998년 모습. AFP=BBC

집권 이후 오르반은 친서방 행보를 보이며 성과를 냈다. 활발한 외교 활동을 통해 헝가리가 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도록 기반을 닦았고, 연평균 5%에 이르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런데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로 서민들의 불만이 커졌고, 국유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하자 여론이 급속히 악화했다. 결국 오르반은 2002년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MSZP)에 정권을 내줬다.

정권 되찾은 오르반, 극우 성향 변모  

이렇게 끝난 듯했던 그의 정치 생명은 2000년대 후반 헝가리의 금융 위기를 계기로 되살아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추진했던 사회민주당 정권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피데스의 지지율이 반등했다.

2010년 총선에서 경제성장 공약을 내세운 피데스는 52.7%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이때 오르반은 기존 친서방 자유주의 노선에서 극우 성향으로 변신한다.

정권을 탈환한 오르반은 법원·검찰·언론을 장악하는 일련의 조치를 감행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대법관을 해임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폐쇄하거나 친정부 기업에 인수됐다.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한편, 난민을 도운 시민을 징역형에 처벌하는 ‘반이민법’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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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반 총리가 지난해 11월 〈세기의 종언〉(Szazadveg) 잡지에서 주최한 주권 회의에 참석했다. 사진 atlatszo 헝가리 매체

이후 오르반은 4연임에 성공해 14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이젠 EU 정계에 나서 유럽의 극우 민족주의 성향 세력을 모으고 있다. 오르반은 지난 7월 유럽의회 정치그룹(정당격) ‘유럽을 위한 애국자(Patriots for Europe)’의 결성을 주도했다.

특히 헝가리는 올 하반기 6개월 동안 EU 의장국(순번제)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자금 지원, 우크라이나의 EU·NATO 가입에 반대하는 오르반의 행보는 상당수 회원국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 편향된 그의 평화회담 주장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에서 평화가 항복과 같은 의미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며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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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5일 러시아를 방문한 오르반 총리(왼쪽)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맞이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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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8일 중국을 방문한 오르반 총리(왼쪽)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맞이 하고 있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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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1일 미국을 방문한 오르반 총리(왼쪽)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이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르반은 지난 7월 EU 의장을 맡자마자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등을 만났다. 상당수 유럽 국가가 ‘기피 인물’로 여기는 이들과 친분을 자랑하는 듯한 모습에 각국에선 거센 비판이 나왔다. ‘유럽의 이단아’ 오르반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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