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MB·朴은 원탁, 尹·韓은 직사각형…독대 파동, 테이블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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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주 앉는 걸 좋아합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원형 테이블을 준비하려 했는데 없네요. 하하하.”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관계자)
24일 오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국보협 사무실을 방문해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처럼 최근 여의도에선 환담 테이블을 둘러싼 대화가 잦다. 지난 21일 ‘윤·한 회동’ 직후 한 대표 측에서 “원형 테이블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이 거절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가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는데 원형 테이블을 요청하는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 본다”라고 반박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전직 대통령실에서 의전 업무에 관여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테이블 위치나 너비, 좌석 배치 같은 환담장 구조는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과거 대통령과 여당 실세의 만남에선 두 사람의 관계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다른 형태의 테이블이 놓였다.
朴과 원탁에서 만났던 MB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화두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과 2008년 총선에서 친이계·친박계의 충돌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격렬했다. 그런 양측의 관계를 바꿔놓은 게 ‘독대 정치’였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뒤 MB 정부 내에선 “박근혜 의원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했다. 그해 8월 21일 MB는 박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배석자 없이 1시간 35분간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MB는 2012년 대선의 공정한 관리를 약속했고, 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 대한 협조를 약속했다.
당시 청와대는 원탁을 마련했다. 두 사람이 원탁 한쪽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듬해 6월 박 전 대통령의 유럽 특사 방문 보고를 겸한 회동 때도 두 사람은 원탁에 앉았다. 2010~2011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두 차례 회동을 조율한 사람이 정진석 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두 사람의 ‘독대 정치’는 정권 재창출로 이어졌다.
김무성과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만난 朴
반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독대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이뤄졌다.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 16일 이뤄진 독대에선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 문제가 이슈였다. 김 전 대표는 거취 결단을 요구했고, 이에 박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 귀국 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이 총리는 나흘 뒤 사의를 표명했다.
김 전 대표는 석 달 뒤에도 박 전 대통령과 16분간 독대했다. 이른바 ‘국회법 파동’으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물러난 직후 새로 구성된 지도부와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독대 직후 김 전 대표의 손에 들린 수첩엔 ‘국회법 새로운 출발’, ‘선진화법’, ‘추경’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은 이듬해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했고,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두 사람의 독대는 실패로 꼽힌다.
“원오브뎀으로 대해” vs “빈 살만도 원탁 없었다”
‘윤·한 회동’에서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은 ‘박근혜·김무성 독대’ 때 테이블보다 간격이 더 좁았다. 한 대표 바로 옆엔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했다. 한 대표 측에선 “원오브뎀(one of them)으로 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대통령실에선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화에서 테이블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박했다. 선례에 비춰봐도 별문제 없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관저에 초청했을 때도 직사각형 테이블에 생수 한 병만 놓고 대화했다. 반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은 원탁에서 진행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의전에 만고불변 정답이 어디 있겠냐”며 “결국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이런 논란까지 번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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