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환율 1400원' 달라진 정부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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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1400원’은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일까, 고환율 시대에 받아들여야 하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일까. 최근 환율이 다시 1400원 선을 위협하며 불붙은 논란이다.

달러당 원화 가치는 지난달 25일 장중 1390원까지 떨어졌다(환율은 상승). 석 달여 만에 최저치다. 원화 가치는 9월까지만 해도 1350원을 웃돌다 10월 들어 가파르게 하락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달러당 원화 가치는 1371원을 기록했다. 1분기(1329원)보다 42원 떨어졌다. 2009년 1분기(1418원) 후 15년여 만에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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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국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원화 가치는 한국 경제 체력을 반영한다. 올해 3분기에 ‘쇼크’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전 분기 대비 0.1%)을 기록한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해외에선 일본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참패하고,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여파로 중동 리스크가 커지며 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부추겼다. 최근엔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이슈까지 불거졌다.

무엇보다 5일(현지시간) 치르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환율 전망이 불투명하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확장 재정 정책으로) 추가 금리 인하가 미뤄져 재차 달러 강세,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옥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올해 4분기 원-달러 환율에 대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1310∼1400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1350∼1450원대로 전망했다.

환율 1400원은 외환 당국이 개입하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환율이 1400원을 넘겼던 건 1990년 환율 변동제를 도입한 이래 1997년(외환위기), 2008년(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레고랜드 사태+미국 금리 인상) 3차례 정도다. 국내 혹은 글로벌 경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자 외환 당국이 즉각 개입한 이유다.

하지만 최근 “그땐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 식으로 정부 인식에 미세한 변화 조짐이 보인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특파원 간담회에서 “1400원대 환율을 뉴노멀로 봐야 하느냐”는 질의에 “현재 1400원은 과거 1400원과 다르게 봐야 한다. (현재 고환율은) 외환위기 당시 환율 상승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답했다. 환율이 1400원대더라도 방어할 뜻이 없다는 취지로 읽혀 논란이 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같은 달 25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환율 대응과 관련해 “타겟(특정한 환율 목표치)보다 변동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과거 외환위기와 달라 지금은 우리가 (달러 채무국이 아니라) 채권자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과 맞물려 환율 대응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환율 당국 태도가 달라진 건 미국 경제가 탄탄한 데다 (과거 위기와 비교될 만큼) 외부에 큰 경제 충격이 없어서다. 외환보유고(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이상, 세계 9위) 등 한국 경제의 건전성 지표도 불안하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환율은 상대적이다. 원화뿐 아니라 엔화·위안화·유로화 등이 동반 약세다.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 대비 특별히 떨어진다면 문제지만, 전방위적인 달러 강세 영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적인 원화 가치를 따지려면 ‘실질실효환율’을 봐야 한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다수 교역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얼마나 구매력을 가졌는지 나타내는 환율이다. 두 나라 간 교환 가치를 나타내는 명목환율과 대비된다. 실질환율이 100 이상이면 기준시점 대비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에 대한 자국 통화가 고평가, 100 이하면 저평가라고 본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당 원화 가치가 1400원 밑으로 떨어진 2008년 실질실효환율이 80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94 수준”이라며 “원화 약세는 맞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만큼) 극단적인 위험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이 유독 대외의존도가 높고 환율 위기에 취약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정적인 외부 충격이 없는데도 고환율로 시름하는 데 오히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최근 들어 경제성장률 하락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원화가치 하락이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약화와 관련 있다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 당국 발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신중해야 한다”며 “환율 1400원 기준선을 쉽게 허물 경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선이 붕괴하면 심리적 요인으로 환투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외환 당국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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