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통시장엔 '반짝 김장손님'…그마저도 없는 음식점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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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에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의 경기 전망이 엇갈렸다. 전통시장은 매출이 늘 거라고 기대하지만, 소상공인은 소비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채소가 진열된 모습. 연합뉴스

“요샌 다발 무, 홍갓, 쪽파, 알타리가 잘 팔려요. 전부 김장 재료들인데, 덕분에 이번 달엔 숨통이 좀 트이겠네요.”(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 상인 김수진(32)씨)

“갈 수록 손님이 없어 정말 힘듭니다. 저녁 장사가 주력이었는데 파리만 날려요. 재료비는 오르고 손님은 줄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요.”(서울 종로구 감자탕집 사장 박모(62)씨)

김장철을 맞은 전통시장 상인들이 모처럼 웃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 장기화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의 표정엔 그늘이 깊다. 전문가들은 김장철 ‘반짝’ 수요에도 당분간 내수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4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 상인의 이달 경기실사지수(BSI) 전망은 82.1로 지난달(79.2)보다 2.9포인트(p)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BSI는 실적에 대한 사업자의 주관적 의견을 수치로 나타낸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부정적 의견이 많고 200에 가까울수록 그 반대다. 전통시장 상인들이 이달 경기가 어렵더라도 지난달보단 나아질 거라고 내다봤단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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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시장 상인들이 기대하는 건 김장 대목이다. 김장철에 시장을 찾는 손님이 늘면서 덩달아 매출이 늘어날 거란 전망이다. 상인들은 지난달보다 수산물(21.3p)·가공식품(6.5p)·축산물(2.8p) 등 식료품 업종 경기가 개선될 거라고 내다봤다.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젓갈 가게를 운영하는 박미혜(64)씨는 “젓갈은 미리 사놓을 수 있는 재료라 지난달 중순부터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라며 “새우젓은 11월 장사가 1년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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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상인들이 김장철을 맞아 경기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이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통시장 경기실사지수(BSI) 전망은 79.2→82.1로 올랐다. 사진은 4일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 시장 한 가게에 고춧가루 등 김장 재료가 진열된 모습. 전율 기자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어”

반면 소상공인들은 지난달보다 이달 경기를 더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소상공인의 이달 BSI 전망은 지난달(83.9)보다 4.1p 내린 79.8이었다. 음식점업(10.3p), 전문 서비스업(9.2p), 부동산업(7.6p) 등 외식·서비스업의 경기 전망이 어두웠다. 소상공인은 그 이유로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53.9%)을 꼽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소상공인은 내수 불황에 따른 소비 침체가 이어질 거라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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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서울 중구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임형섭(42)씨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는 수준”이라며 “코로나 전엔 된장찌개를 6000원에 팔았는데, 지금은 9000원에 팔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씨는 “2013년부터 이 자리에서 장사했는데 요즘처럼 힘들고 막막한 적이 없었다”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5년째 쌈밥집을 운영하는 박금순(68)씨는 “평일 저녁엔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다”라며 “비용을 아끼려고 발버둥을 쳐도 손님이 안 오니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9월부터 가게 월세가 올랐는데, 당장 이달에 월세 302만원을 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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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 경기실사지수(BSI) 전망은 지난달(83.9)보다 4.1p 내린 79.8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은 내수 침체 여파로 경기 둔화가 이어질 거라고 전망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매장 간판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영업 위기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내수 침체에 따른 자영업 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거라고 전망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지만 물가 수준 자체는 아직 높은 편”이라며 “집값이나 가계부채 문제로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어렵고, 재정 적자가 심해 재정을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당분간 내수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해 2, 3월 3%대까지 높아졌다가 4~8월 2%대로 낮아졌고 지난 9월 전년대비 1.6% 상승률을 기록해 다소 안정됐다. 하지만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심리적 불경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물가 수준을 반영한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4만3000원으로 1년 전(355만8000원)과 비교해 0.4%(1만5000원) 줄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년 연속으로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등 가계 소득이 충분하지 못해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단기적으론 소비 진작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장기적으론 자영업 구조조정을 위한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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