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쟁 중에도 아름다움 찾을 수 있다, 그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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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계 캐나다 작가 킴 투이(56)는 10살 때 고무보트로 베트남을 떠나 말레이시아 난민수용소를 거쳐 캐나다 퀘벡에 정착했다. 그가 쓴 자전적 소설 『루』(2009)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퀘벡과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킴은 데뷔작 『루』로 2010년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미투 이슈로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은 노벨문학상을 대신해 만들어진 스웨덴 ‘뉴 아카데미 문학상’ 최종심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올랐다.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지난달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기존 디아스포라 문학과 『루』는 어떻게 다른가.
-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다. 베트남은 20년간 전쟁을 겪었고, 그 전에는 식민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을 이야기할 때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전쟁의 공포가 아닌 아름다움이다.”
- 전쟁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나.
- “전쟁 중에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포탄이 터진 자리에서만 연기가 피어나는 게 아니다. 차를 끓여 마시면 찻주전자에서도 연기가 난다. 그 차를 친구와 나눠 마시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인간은 전쟁 중에도 기어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존재다. 이런 아름다움이 인간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
- 최신작인 장편 『앰』 등 작품 대부분이 서정적이고 따뜻하다.
- “내가 캐나다에서 받은 사랑이 그랬다. 처음 퀘벡에 도착한 건 비좁은 난민 캠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뒤였다. 온몸에서 악취를 풍겼고 머릿니가 득실거렸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캐나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내게 이마를 맞대고 몸이 부서져라 포옹해줬다. 그들이 보낸 따뜻한 눈빛이 오직 목숨을 부지하려고 먼 길을 온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시켰다.”
- 정체성 혼란은 없었나.
- “베트남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해도 베트남 사람이다. 동시에 퀘벡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100% 퀘베커라고 느낀다. 캐나다가 중시하는 가치를 나도 중시하기 때문에 100% 캐나다인이다.”
- 로스쿨 졸업 뒤 변호사로 일하다가 돌연 베트남 식당을 열었다.
- “베트남 문화를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벌인 일인데, 사업 수완이 없어 망했다. 그래도 그 덕에 작가가 됐다. 식당 문을 닫고 ‘이제 진짜 뭘 하지’라고 생각한 끝에 나온 결론이 소설 쓰기다. 뒤죽박죽인 원고를 출판사에 가져가 보여준 이도 당시 식당 단골이었다. 그렇게 41살에 작가가 됐다.”
- 캐나다는 200년 넘게 평화를 유지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출간한 전쟁 이야기가 많은 이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 “보편성 때문이다. 소설은 전쟁 이야기지만, 더 들여다보면 아이 잃은 엄마 이야기다. 아이가 있다면 누구든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을 대입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역사, 정치, 이데올로기와 무관하다. 인간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정작 베트남에서는 책을 내지 못해 아쉬울 것 같다.
- “45개국에서 책을 냈지만, 베트남에서는 못 냈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베트남을 떠난다’는 구절이 있는데, 아마 이 부분이 문제 된 것 같다. 부모님 지인 한 명이 ‘당신 딸이 공산주의를 미화한다’고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공산주의자는 악마인데,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했다’는 게 이유였다. 양쪽에서 미움을 받은 셈이다.”
- 영향받은 작가는.
-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사랑한다. 캐나다에 와서 뒤라스 책을 닳도록 읽었다. 내가 10살 때 떠나온 베트남은 매일 탱크가 지나다니는 먼지 낀 거리였다. 그런데 뒤라스의 『연인』에 나오는 베트남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거리를 거니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연인』은 내게 베트남도 폭탄과 전쟁이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프랑스 작가 뒤라스는 사이공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작가로서 꿈이 있다면.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 부여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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