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e메일 스캔들'에 힐러리 무너졌다…해리스·트럼프 가를 한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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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78)의 등장은 미국 정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상·하원도 주정부 행정 경험도 없는 완벽한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각종 스캔들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미국민을 둘로 나누는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 희대의 사건이 대선 기간 내내 이어졌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치열한 랠리,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를 상대로 펼친 세 차례 대선은 어떻게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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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야외 유세 중 총격을 받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무대에서 내려가며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다. 올해 대선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다. AP=연합뉴스

[2016 트럼프 승] 힐러리 e메일 스캔들 

2016년 대선 당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온 트럼프는 등장 자체가 이변이었다. 그에게 열광한 건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 아닌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백인 노동자였다. 트럼프는 멕시코 등 이웃 국가를 향한 증오를 부추겼다. 특히 국경을 마주한 멕시코를 향해 "마약·범죄·강간범을 미국으로 보낸다"고 맹비난하면서 '국경 장벽' 건설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토록 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 출신답게 약점도 금방 노출됐다. 유세 기간엔 각종 논란이 트럼프를 따라다녔는데, 특히 '성 스캔들'이 많았다. 그가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것에 대해 자랑하는 내용이 담긴 음성 테이프가 유출된 게 대표적이다.

그래서일까.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줄곧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뒤졌다. 그런데 클린턴 캠프에서 이른바 'e메일 스캔들'이 터지면서 판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힐러리의 수양딸로 불렸던 비서인 후마 애버딘이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e메일 뭉치를 적절히 폐기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개인 e메일을 공적 용도로 썼단 사실이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로 밝혀지며 일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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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만찬에 참석한 후마 애버딘(오른쪽). AP=연합뉴스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 리비아 '벵가지 사태'에서 숨진 외교관 2명의 부모가 힐러리를 고소하기까지 했다. 힐러리의 부주의한 이메일 사용 탓에 두 외교관의 소재가 테러범에 노출돼 숨졌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도 잃고 함께 치른 상·하원 선거도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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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9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공화당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듣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부상을 예견하지 못한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도 패자였다. "여론조사에서 고학력·흑인 유권자만 지나치게 부각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샤이 트럼프'의 지지율은 과소 평가됐다"는 게 훗날 분석이었다. 샤이 트럼프들이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거짓 답변으로 일관해 거의 모든 예측이 빗나갔고, 조사기관의 공신력에 흠집이 났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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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마가'라고 새긴 트럼프 지지자. 로이터=연합뉴스

[2020 트럼프 패]'흑인의 삶도 소중하다'

2016년과 달리 2020년 대선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이 트럼프를 꺾었다. 사실 바이든도 고령 이슈(출마 당시 77세)에 더해 차남인 헌터 바이든의 마약·성매매 사진이 담긴 '노트북 스캔들'이 공개되는 등 악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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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악재에도 2020년 흑인 등 유색인종 유권자,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바이든에게 표를 줬다. '트럼프-바이든' 대결의 결정적 장면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었다. 그해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진 것이 트럼프 입장에선 타격이었다. 게다가 주요 경합주에서 '절대 트럼프는 안 찍는다'는 '네버 트럼프(Never Trump)' 유권자까지 등장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우군이었던 러스트 벨트 3개 주(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의 백인 노동자 표심도 2020년엔 트럼프를 떠났다.

왜 그랬을까. 선거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과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의 대응 부실이 결국 판세를 뒤흔들었다"고 봤다. 미국 내 실업자가 1000만 명을 넘는 등 경제까지 악화한 게 더 큰 화를 불렀다. 트럼프는 "코로나19의 기원은 중국"이라면서 '중국 때리기'에만 열중했지만, 미국민의 불만은 트럼프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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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사진)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격론을 벌이고 있다. [AP·AFP=연합뉴스]

하지만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미 의회가 인정하는 날이었던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을 부추겼다는 의혹에 따라 트럼프는 임기를 일주일 앞둔 그해 1월 13일 미 하원에서 탄핵당했다. 하지만 이후 상원이 열리지 않으면서 탄핵안은 표결에 부쳐지지도 않았다.

이로써 트럼프는 미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다.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에서 첫 탄핵을 당한 지 13개월 만이었다. 당시 탄핵은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바이든과 그의 차남 헌터를 조사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으로 불거졌다. 하원을 통과한 탄핵안은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표결 끝에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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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청년들이 2020년 11월 4일 백악관 인근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플라자’에서 춤추고 있다. 이들은 바이든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커지자 환호했다. AFP=연합뉴스

[2024 트럼프 ?] 트럼프 암살 미수   

이렇게 두 차례 탄핵 위기까지 처했던 트럼프는 각축 끝에 2024년 대선 후보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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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이 2024년 10월 26일 미시간주 캘러머주의 윙스 이벤트 센터에서 열린 유세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대선의 결정적 장면은 단연 트럼프 암살 미수다. 트럼프는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농장 박람회장에서 유세하던 중 귀에 총알이 스치는 사고를 당했다. 트럼프는 사고 직후 피를 흘리며 손을 치켜들고 '싸우자(Fight)'를 외쳤다. 이후 그의 지지자들은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열광했다.

이어 트럼프는 또 다른 암살 고비를 넘긴다. 지난 9월 15일 한 무장 괴한이 플로리다에서 골프를 치던 트럼프를 노렸다. 다행히 경호 요원의 대응으로 미수에 그쳤다. 연이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트럼프는 이를 영웅적인 이미지를 부각할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TV토론에서 참패한 바이든이 대선 후보를 중도 사퇴하면서 대선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불법 이민자 급증과 고령(81세) 이슈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바이든이 지난 7월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즉시 해리스 부통령을 후보로 내세웠다. 이후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전당대회까지 컨벤션 효과를 일으키면서 해리스의 지지율은 급격히 올랐다. 처음이자 마지막 TV토론에서도 해리스가 트럼프보다 나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대선의 향배가 해리스로 기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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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치르는 미국 대선은 ‘바이든 대 트럼프’ 구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맞붙는 구도로 재편됐다. AP=연합뉴스

하지만 '해리스 특수'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물가 등 경제난과 두 개의 전쟁 장기화에 따라 바이든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현직 부통령인 해리스의 인기도 빠르게 식었다.

그 결과 투표일(5일) 직전까지도 양측의 지지율은 초박빙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지난 3일 발표된 NBC 여론조사에선 두 후보의 지지율은 49%로 동률이었다.

그래서 뻔한 공약 경쟁보단 "저 인간이 되면 미국이 망한다"는 식의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치고 있다. 세 차례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꿰찬 트럼프의 시대가 또 올지, 해리스가 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에 오를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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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유세 집회 중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린 가운데,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얼굴에 피가 묻은 채 경호원들에게 보호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권자 7800만명 이상 사전투표

올해는 사전(우편)투표율이 역대 최고라는 점이 변수다. 플로리다 대학 선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유권자 1억8650만명 중에 2일 기준 사전 투표자가 7800만명을 넘어섰다. 흥미로운 점은 두 후보 모두 사전 투표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원래 사전투표를 '사기'라고 비난하며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나도 사전투표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델라웨어주 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무엇이 트럼프의 마음을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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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델라웨어주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휠체어를 탄 여성을 밀어주며 줄을 선 바이든. A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선거 참모들이 백악관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합주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이 허리케인 피해 때문에 투표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당일 투표율이 떨어질까봐 사전투표를 적극적으로 독려한다는 것이다.

반면 폴리티코는 "이번 사전 투표에서 여성 유권자의 참여율이 남성보다 10%포인트 높다"면서 "여성 참여율이 높은 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유리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선 비(非)백인 후보가 실제 득표율이 여론조사보다 낮다는 ‘브래들리 효과’가 3번의 대선 중 유일한 비백인 후보인 해리스에게 실제로 일어날지도 관심이다. 정치통계 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뉴욕타임스(NYT)에 인도·자메이카 혼혈인 해리스 후보에게 ‘브래들리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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