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봄 오면 응급실 닫힌다"…1000억 적자 대학병원장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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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병원에서 일하던 혈액종양내과 교수 5명 가운데 2명이 이달 중 병원을 떠난다. 이들은 지난 2월 시작된 의정갈등 영향으로 격무에 시달리다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이에 부산ㆍ경남 일대 암 환자 치료 전초기지 기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을 떠나는 교수 등 의료 전문의가 늘면 지역 의료 체계가 무너질 거란 우려도 커진다.
현장 떠난 전문의 20여명… “막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 정성운(62) 부산대병원장은 지난 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혈액종양내과 교수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올해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이들은 당직과 수술 일정 조율을 포함해 환자 식음료ㆍ소변줄을 가는 등 업무를 모두 직접 도맡아왔다. 이런 상황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이들 중 1명은 병가를, 다른 1명도 건강이 나빠져 사직을 원했다고 한다.
다른 진료과 상황도 비슷하다. 부산대병원 전공의 243명 중 남은 건 5명이다. 의정갈등 기간 교수 등 전문의 숫자는 324명에서 301명으로 줄었다. 정 원장은 “전문의 사직이 특별히 쏠린 곳은 없다. 현재 모든 진료과가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의료진 피로 누적은 심각한 수준이다. 새로운 환자를 받기 어렵고, 수술이 기약 없이 밀리는 문제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반 토막, 연말까지 적자 1000억
실제 부산대병원 수술 건수는 1월 2000건에서 지난달 1200건으로 크게 줄었다. 병원 수익 감소로 직결되는 문제다. 정 원장은 “연말까지 진료수익 적자가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부산대병원은 지난 4월부터 강도가 가장 높은 비상 경영체제 3단계를 시행 중이다. 퇴직금으로 한 번에 큰돈이 나가는 걸 막으려고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에 대한 명예퇴직 접수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정 원장은 “수술 역량은 생명이 위태로운 암 환자나 사고로 크게 다친 초응급 환자에게 집중하고 있다”며 “초응급 환자는 언제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고 모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초응급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에게 피로도가 매우 높은데, 이마저 모든 의사가 수술에 투입된 상황에선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스카우트 제의 빗발… 내년 3월 마지노선”
정 원장은 지역 대학병원이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있는 데드라인이 새학기가 시작하는 내년 3월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학병원 교수는 돈보다는 연구과 교육 등 후학 양성에 더 뜻을 둔 사람”이라며 “하지만 올해 의대 파행 속에 큰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교육은커녕 병원 업무에 쫓겨 연구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외부 대형병원에선 스카우트 제의가 빗발치고, 실제로 흔들리는 이들도 많다. 내년 3월에도 학생이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 이들은 병원을 떠날 것”이라며 “진료를 중단하는 과가 속출하고, 응급실도 격일제로 운영해야 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국정감사 때 정 원장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 관계 부처와 의료 현장이 긴밀히 논의해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 원장은 “지금의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현장과 소통이 부족했던 게 아쉽다”고 평가했다. 전공의들이 ‘내년 의대 정원 재논의’를 대화 조건으로 내 것과 관련, “이미 절차가 많이 진행돼 어려움이 클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고,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질 거다. 재논의를 포함한 특단의 조치라도 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흉부외과 교수인 정 원장은 “단순 증원으로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내놨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의사에는 의료사고가 나도 일정 정도 책임을 면하게 하고 의료 수가 조정도 필요하다”며 “내년 3월까지 국립 대학병원이라도 버티려면 인건비 등 정부 예산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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