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랑스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158년 만에 놓인 ‘특별한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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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해진 비단표지 한 귀퉁이에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중국도서’로 분류했단 뜻이다. 실제로는 조선 왕실이 중요 행사를 치른 뒤 관련된 의례기록을 모아 만든 책, 의궤다.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중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갔다. 한국에 돌아온 건 2011년, 외규장각을 떠난 지 145년 만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실 개관 #환수받은 의궤들 교체해가며 상설전시 #디지털콘텐트 활용, 이해도 크게 높여
이렇게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총 297책)를 상시로 만날 수 있는 전용공간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을 연다. 상설전시실 2층 서화관 내 마련된 ‘외규장각 의궤실’이다. 약 59평(195㎡) 규모로 조성된 전시실은 강화도를 떠난 지 158년 만에 확보된 ‘의궤 전용 공간’이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2점을 별도로 모신 ‘사유의 방’ 건너편에 해당한다.
14일 먼저 둘러본 전시실은 입구에 마치 설치미술처럼 층층이 연출한 의궤 표지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군데군데 그을리고 훼손된 흔적이 역사의 상처처럼 느껴진다. 1970년대 프랑스 도서관 창고에서 의궤 존재가 확인됐을 당시, 각각의 비단 표지는 이렇게 해져 있었다. 프랑스 측은 새로운 비단으로 장황(책·화첩 따위를 둘러 꾸미는 일)하고 헌 표지들은 보관했다가 2011년 의궤 반환 때 함께 돌려보냈다. 의궤실 설계를 담당한 이화여대 김현대 교수는 입구를 이 헌 표지들의 복제품으로 장식해 돌아온 의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전시실은 크지 않지만 외규장각 의궤에 얽힌 사연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서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배치됐다. 실제 외규장각 내부와 비슷하게 기둥과 문살을 설치한 ‘왕의 서고’에선 왕이 보던 어람(御覽)용 의궤와 단 한부씩 전해지는 유일본 의궤를 각 한 권씩 만날 수 있다. 이를 포함해 의궤실에선 한번에 8책씩, 1년에 4차례 교체해 연간 32책을 공개한다.
첫 전시엔 병자호란 이후 종묘의 신주를 새로 만들고 고친 일을 기록한 유일본 의궤 『종묘수리도감의궤』와 제작 당시의 책 표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어람용 의궤,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가 나왔다. 조선 19대 왕 숙종(재위 1674~1720)이 치른 세 번의 가례를 기록한 의궤 3책과 숙종의 승하부터 삼년상을 치르는 절차를 기록한 의궤 3책도 공개된다.
무엇보다 한자로 된 원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디지털 책’이 두드러진다. 일종의 교육서비스로, 특수하게 고안된 책장을 넘기면 의궤에 실린 내용이 한글과 영문으로 번역돼 나오고, 다양한 그림과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행사 물품을 그림으로 기록한 약 3800개의 ‘도설(圖說)’을 활용해 디지털 콘텐트로 선보이는 등 의궤 이해를 한층 높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김재홍 관장은 “의궤 환수 후 두 차례 특별전을 했고 총 7권의 학술총서가 나와 이번 전시의 밑거름이 됐다”면서 “전용전시실을 통해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덕 고고역사부장은 “치밀하게 기록한 문화유산이 많은 분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문화콘텐트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외규장각 의궤=정조(재위 xxxx-xxxx)의 명으로 강화도에 설치된 외규장각에 보관됐던 왕실 행사 의례 기록물.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됐다가 100여년 만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분관 창고에서 존재가 확인됐다. 이를 발견하고 한국에 알린 박병선 박사(1923~2011)를 비롯한 각계 노력에 힘입어 반출 145년 만인 2011년 총 297책이 환수됐고 이 가운데 유일본이 29책이다. 영구반환은 아니고 정부 간 협약에 따라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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