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복려 “K푸드 근본엔 궁중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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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즉위 30주년 및 41세 생일 축하잔치 때 고종이 받은 안주상을 재현한 모형. 궁중음식문화재단(이사장 한복려)이 재현해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에서 선보인다. [사진 국가유산청]

“평생 소원하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네요. 어머니(고 황혜성)께서 조선왕실 상궁에게서 궁중음식 전수받으신 걸 내가 이어서 해온 게 50여년인데, 제대로 된 전시로 보여드리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획전시 ‘궁중음식-공경과 나눔의 밥상’ 언론공개회.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제3대 기능 보유자 한복려(77·사진)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소회를 밝히며 전시실을 둘러봤다. 관련 유물 20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내년 2월 2일까지·무료)는 재단과 박물관이 공동 기획했다.

한 이사장은 특히 1892년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열린 잔치를 재현한 상차림 앞에 오래 머물렀다. 고종은 9번의 술잔과 총 63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9번의 안주상을 받았는데, 재단은 이를 모형으로 꼼꼼히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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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음식상 사진은 물론 없죠. 대신 의궤(조선왕실 의례 기록)와 그날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 있어요. 그런데 음식은 모양만이 아니라 맛을 내야 하고, 재료마다 조리법이 제각각인데. 고조리서와 문헌을 연구하고 체득한 끝에 이런 전시로 나온 겁니다.”

잔칫상과 제례 같은 특별한 의례음식 외에 일상적인 왕실 밥상도 재현했다. 일상음식 기록은 많지 않지만, 정조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원형을묘정리의궤』와 승하한 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3년간 빈전에 음식을 올린 기록인 『상식발기』 등을 근거로 삼았다. 순종과 순정효황후를 실제 모셨던 상궁들 증언도 참고했다.

황혜성(1920~2006) 선생은 숙명여전 조교수였던 1942년에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1889~1972)으로부터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기억과 구술로만 전해지던 걸 정리해 요리책 『이조궁정요리통고』를 편찬했고, 궁중음식을 국가무형유산(옛 무형문화재)으로 등재시켰다. 1대 한희순, 2대 황혜성을 거쳐 큰딸인 한 이사장이 3대 기능 보유자다.

궁중음식을 특히 화려하게 만드는 고임상(음식을 높이 쌓는 것)도 황혜성·한복려 모녀의 대 이은 연구로 재현했다. 예컨대 『진연의궤』에 신정왕후 조대비의 팔순 잔치가 꼼꼼히 기록돼 있지만, 고임상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마침 어머니 팔순(1999년)이라 그걸 제자들과 조선조 궁중연회식으로 풀어봤어요. 당시 ‘이건 돈만으로 안 되는구나, 효의 선물이구나’ 했어요. 우리 궁중음식이 그런 겁니다.”

이번 전시도 궁중음식의 화려함보다 진상된 식재료가 상궁·숙수의 손을 거쳐 수라상으로 오르기까지 과정과 이를 둘러싼 통치 철학을 음미하게끔 구성했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수라상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에서 임금의 솔선수범을 되새겨보는 식이다.

한 이사장은 드라마 한류의 원조 격인 ‘대장금’(2003)의 요리 자문을 맡았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몇 편을 흥미롭게 봤다는 그는 “창의적인 신기술을 접목해 한식을 풀어내더라”라면서도 K푸드 열풍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라의 경쟁력이라는 게 문화로 보여지고, 그중 식문화가 가장 접근하기 쉽잖아요. 궁중음식 기록엔 임금이 드신 것부터 군졸·백성에게 나눠준 것까지 포함돼요. 재료나 기법에 치중하기보다 우리 음식 문화의 근본을 찬찬히 돌아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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