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재계 강력 반발 다음날 이재명 “상법 개정, 공개토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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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 더불어민주당이 정책 토론회를 연다. 당초 “연내 처리”를 목표로 법 개정을 밀어붙였던 민주당이 숨고르기에 나선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2일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상법 개정과 관련된 (기업과 투자자) 양측의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법안을) 바꿀 게 아니라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 토론을 통해 과연 누구 주장이 옳은지, 합리적 결론에 이를 방법은 없는지 토론해 볼 필요가 있겠다”라며 “제가 직접 토론에 참여해보고 쌍방 입장을 다 취합해 본 다음에 우리 당의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람이 만든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며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고 합리적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토론회를 제안한 건 전날(21일) 재계에서 상법 개정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긴급 공동 성명’을 발표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ㆍFKI)와 삼성ㆍSKㆍ현대차ㆍLG 등 주요 16개 그룹 사장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애로가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주요 그룹 사장단이 공동 성명을 발표한 건 2015년 7월 이후 9년 만이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개정안에 담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조항이다.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인 이정문 의원이 지난 19일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는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또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문구도 신설됐다. 재계에선 이 내용이 “이사가 결정할 때 각 주주의 이익까지 계산해야 한다는 뜻으로, 경영 판단 자체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외에도 해당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1명→2명)와 함께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각 주주가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받는 걸 뜻한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0일 일반 투자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어렵긴 하지만 (개정안을) 책임지고 통과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재계 우려가 커지면서 “법안 내용을 좀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기류가 커졌다. 이 대표는 성명이 나온 21일 저녁 진성준 정책위의의장에게 “토론회를 여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진 의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공개 토론에서 나온 공통점과 차이점을 잘 가리고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수용하는 프로세스를 거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당장 ‘당근’으로 검토하는 건 형법상 배임죄를 완화하는 방안이다. 이 대표는 20일 간담회에서 “이제는 기업인을 배임죄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손질을 시사했다. 그간 재계에선 형법상 일반ㆍ업무상 배임죄와 상법상 특별배임죄로 배임죄를 중복 처벌하고, 그 수위가 과도하다고 지적해왔다.
진 의장은 통화에서 “불가피하게, 또는 최선이라고 판단해서 경영상의 판단으로 한 행위의 경우에는 면책해야 한다는 게 (배임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라며 “그 판례를 그대로 가져와서 형법에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도부 관계자도 “배임죄 폐지나 완화에 대해선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당 지도부는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도 “충분히 손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 의장은 통화에서 “주주로서 권한이나 이익이 침해받았다고 생각될 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법 기술적으로 문구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문 의원도 통화에서 “주주 충실의무가 불편하다면 보호의무만 남겨둘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상법 개정 속도조절에 나선 건 최근 잇따른 ‘우클릭’ 행보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의 반발을 다독이는 한편 “기업에도 합리적인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주주 권리를 보장하는 상법 개정이 일반 '개미' 투자자의 숙원인 만큼 “금투세 폐지에서 보여지듯, 개미 투자자를 중시하는 이 대표가 상법 개정은 관철할 것”(재선 의원)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재계에서도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넣는 방안을 아예 배제하지 않는 한 실효성이 없는 당근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통화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상장·비상장 회사를 가리지 않고 적용돼서 범위가 너무 넓은 게 근본적 문제”라며 “처음부터 법안에 과도한 규정을 넣어놓고, 나중에 ‘이걸 빼주겠다’는 식으로 카드로 쓰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상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관인데,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어서 민주당이 토론회 개최로 명분을 쌓은 뒤 연내 강행 처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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