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커플 매칭땐 1000만원…청춘남녀 "검증된 만남"에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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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2시 30분 서울시 서초구 세빛섬에 한껏 멋을 낸 청춘남녀들이 모였다. 반포한강공원에서 섬쪽으로 다리를 건넌 이들 중엔 긴장한 듯 두 번 정도 심호흡을 하며 머리를 다듬는 남성도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패딩을 손에 든 채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여성도 보였다. 이들이 향한 곳은 세빛섬 실내공연장 입구. ‘설렘, 인(in) 한강’이라고 쓰인 주홍빛 입간판과 루돌프 머리띠를 한 요원들이 젊은이들을 맞았다.
서울시가 미혼남녀 100명의 ‘만남의 장’을 열었다. 그간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혼인율 하락과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단체 미팅을 주선해왔지만 서울시가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오후 3~9시까지 한강 요트 투어를 비롯해 1:1 대화, 레크레이션 게임, 칵테일 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이 과정에서 최소 15명의 이성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행사가 끝날 즈음 각자 마음에 드는 이성 1~3순위를 적어 제출했다. 최종 커플 성사 여부는 다음 날인 24일 당사자들에게 개별 통지된다. 서울시는 연결된 이들에게 총 커플 수에 따라 최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데이트권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이성희(34·남)씨는 “집·직장을 오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했던 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며 “끝나는 길엔 아쉬워서 발길이 안 떨어졌다”고 말했다. 여성 참가자 이세윤(30)씨는 “노을 시간에 맞춰 요트를 탔는데 옆에 있던 파트너와 교감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며 “경쟁자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호감 표현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서울시 주관 소개팅을 향한 청년들의 관심은 시작 전부터 뜨거웠다. 정원 100명(남50·여50)을 모집하는 이 행사에 총 3286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이 33대 1에 달했다. 서울시도 이 정도 인기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실 관계자는 “신혼부부를 위한 지자체의 (저출생) 지원 사업은 많지만 청년들을 위한 사업은 부족하다는 판단에 다시 기획했다”며 “공공기관 행사에 대한 편견이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폭발적인 관심이 쏠려 놀랐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프로필 검증에 오히려 믿음이 갔다고 한다. 서울시는 사전 접수 시 자기소개서·주민등록등본·혼인관계증명서 등을 요구하고, 미혼 여부를 검증한 뒤 직장(소득)과 성범죄 이력까지 조회해 참가자들을 추렸다. 여성 참가자 박모(32)씨는 “지인들로부터 소개를 받는 것도 한계가 있고, 동호회에서 만나자니 막상 타인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며 “서류를 받아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단 생각에 용기 냈다”고 했다. 성희씨는 “제가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만남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진심인 사람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소통이 늘고 대면 활동이 다소 줄어든 젊은이들이 ‘희소하더라도 검증된 만남’을 추구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층은 믿을 만한 단계를 거쳐 신원이 보증된 상대를 찾는 일에 적극적”이라며 “민간 업체만큼 비싼 돈을 주지 않아도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지자체 행사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성에 관심은 있어도 만날 기회가 적은 청년들에게 지자체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며 “다만 소규모를 대상으로 한 일시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 주도의 문화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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