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명 가수 입에서 시작된 '손님은 신'...이젠 일본선 없어질 …

본문

일본 시사 용어집을 내는 출판사가 매년 선정하는 ‘2024년 신어・유행어 대상’ 후보가 이달 초에 발표됐습니다. 그 해에 이슈가 된 키워드를 뽑는 것인데요. 시대를 기록하는 의미도 있고 , 국민들이 ’올해는 이런 일 있었네요’라고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올해 대상 후보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선수가 달성한 시즌 50 홈런, 50 도루를 의미하는 ‘50-50’, 집권 자민당의 선거 패배로 이어진 ‘비자금 문제’, 마트 등에서 쌀이 사라진 ‘레이와(令和)의 쌀 소동’ 등 스포츠·정치·사회 분야와 관련된 용어 30개가 포함됐어요.

17323932477716.jpg

지난 9월 도쿄에 있는 한 편의점에 남성이 들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 중 하나가 ‘카스하라’라는 단어입니다. 카스하라란 편의점·음식점 등 사비스업 종사자에게 고객이 괴롭힘을 가하는 행위를 뜻하는 영어 표현(customer harassment)를 일본식으로 줄인 말이에요.

직원 절반이 폭언 등 피해

카스하라 피해는 몇 년 전부터 부각됐는데요. 특히 올해엔 각 지자체와 기업들이 다양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세쿠하라 (성희롱)’, ‘파와하라(갑질)’ 등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17323932479175.jpg

일본 유통,서비스업 노조인 UA젠센이 만든 카스하라 방지를 위한 동영상.카스하라에 해당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UA젠센 유튜브 캡처

일본 최대 노조인 UA젠센이 지난 6월 약 3만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카스하라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최근 2년 내에 카스하라 피해를 당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46.8%에 달했습니다.

피해 유형은 ‘폭언’(39.8%)이 가장 많았고, 이어 ‘위협·협박’(14.7%), ‘같은 내용의 반복적인 클레임’(13.8%) 순이었어요. ‘겨울철 야외에서 2시간 이상 사과를 강요당했다’, ‘고객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등의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조사됐습니다.

조사 결과 가해 고객의 70.6%는 남성이었고요. 연령은 60대(29.4%)가 가장 많았습니다. 40대 이상이 총 91.3%에 이르렀습니다. 가해자에 중년·고령층 남성이 많은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년간 계속하던 코로나19 로 인한 스트레스 누적, 정년퇴직한 엘리트 직장인들의 사회적 소외감 등을 꼽았습니다.

17323932480499.jpg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AP=연합뉴스

고이케 도쿄도지사 주도로 ‘카스하라 방지 조례’ 제정

조사 결과 피해를 당한 직원 중 ‘불쾌감이 지속됐다’ 는 응답이 50.5%에 달할 정도였어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도쿄도는 지난 10월 전국 최초로 ‘카스하라 방지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지사가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입니다.

조례는 카스하라를 ‘현저한 불쾌감을 주는 행위’로 규정하고, 고객에게 언행에 주의할 것을 요구힙니다. 그리고 기업 등에는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조례에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만, 기업과 지자체는 카스하라에 따른 직원 이직 등을 우려해 다양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대표적인 대책 중 하나가 편의점·음식점 등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직원의 명찰에서 실명을 노출하는 대신 이니셜이나 ‘점장’ 등 직함만 표기하는 것인데요. 개인이 특정되면서 악질 고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SNS 등을 통해 공격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죠. 어떤 대형 보험사는 AI를 활용해 악성 클레임으로 판단되는 문구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메일로 알리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1732393248189.jpg

일본 편의점 로손은 지난 6월 카스하라 대책을 위해 직원 명찰을 이름 대신 직함과 이니셜만 표기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로손 공식 홈페이지 캡처

유명 가수의 말이 잘못 전파

일본엔 오래전부터 ‘고객은 신’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고객은 신처럼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신에게 대하듯 철저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죠.

이 말은 1961년 엔카(演歌) 가수 미나미 하루오(三波春夫, 1923~2001)가 공연에서 “고객은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 게 기원이 됐다고 합니다. 애초엔 ‘고객을 신으로 여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겠다’는 의미였다고 해요.

그런데 이 말이 일본 사회에서 서비스업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면서, 점차 ‘고객은 어떤 부당한 요구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의미가 변질됐습니다. 때문에 카스하라란 문제가 생긴거죠.

상황이 이렇게 치닿자 미나미의 큰 딸이 나서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 말이 미나미의) 원래 뜻과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우려를 밝혔습니다. 아버지가 '고객은 신이니 철저하게 소중히 여기고 아첨하라', '무슨 짓을 당하든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라'는 식의 발언을 결코 한 적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올해 유행어 연간 대상은 12월 2일 발표됩니다. 어떤 유행어가 대상에 오를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카스하라의 근절은 시급한 일입니다. 고객 한명한명의 현명하고 신중한 언행으로 내년에는 키스하라란 단어가 유행어 목록에 사라지길 기원합니다.

관련기사

  • 日마트 매대서 쌀 사라졌다…"전쟁 났나" 난데없는 쌀 대란, 왜[줌인도쿄]

  • 오타니 또 새 역사 썼다···MLB 사상 첫 '지명타자 MVP'

  • '스캔들 의원' 못 자른 일본 자민당…민심이 정권 심판했다 [view]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0,56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