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쟁사 AI 칩 위에서 버터 녹였다···발열 잡은 애플 출신 딥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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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만 잘한다’, ‘삼성·SK 같은 대기업 위주다’... 한국 반도체에 대한 단골 지적이다. 세계 시장에서 비중이 커지는(74%)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은 불모지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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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반도체 박재홍 대표. 사진 보스반도체

그러나 바로 그걸 강점으로 활용하는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있다. 삼성에서 쌓은 글로벌 경험·네트워크를 자산 삼은 보스반도체, ‘메모리 잘 쓰는 시스템 반도체’를 만든 딥엑스다.

‘한국의 브로드컴’ 목표, 보스반도체

설립 3년차인 보스반도체는 ‘경력 같은 신입’이다. 삼성전자에서 애플 초기 아이폰용 AP와 테슬라 자율주행용 칩을 맞춤 개발한 시스템 LSI 사업부 부사장 출신 박재홍 대표가 지난 2022년 창업했다. 테슬라·아우디 같은 글로벌 업체와 협업 경험이 풍부해, 현대자동차도 일찌감치 보스반도체를 주목하고 지금까지 두 차례 투자를 단행했다.

주력 제품인 차량용 인공지능(AI) 가속기 ‘N1’은 이미 개발을 마쳐(테이프아웃), 연내 삼성파운드리 5나노 공정에서 샘플을 확보하고 내년 하반기 양산할 예정이다. 칩 하나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제품 A1도 내년 초 개발 착수한다. 지난달 경기도 판교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A1만 쓰면 일반 수준의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N1과 A1을 결합하면 고사양 차량 자율주행을 구현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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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박재홍 보스반도체대표와 와 미국 AI 반도체 기업 텐스토렌트 짐 켈러 대표가 차량용 SoC(시스템온칩) 반도체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사진 보스반도체

박 대표의 비전은 뚜렷했다. “자체 칩을 설계하며, 고객사 주문형 반도체(ASIC)도 만드는 한국의 브로드컴”이다. 반도체 회사가 양질의 설계자산(IP) 하나를 확보하는 데 거액이 드는데, IP를 자사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사 제품에 활용해야 현금 흐름이 생기고 호흡이 긴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거다. 그는 “미국 브로드컴은 강력한 IP를 보유했기에, 통신 칩 경쟁사들도 어쩔 수 없이 브로드컴에 설계를 맡긴다”라며 “고객의 수요를 척척 알아듣는 경험·기술력과 강력한 IP를 갖춘 팹리스”를 보스 반도체의 미래로 제시했다.

그는 “삼성 파운드리가 어렵다지만 여전히 세계 2위고, 한국에는 팹리스의 잠재 고객사인 자동차·전자 대기업들이 있다”며 “한국은 팹리스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팹리스가 ‘테스트-양산-(고객)피드백’을 최소 3회 이상 돌아야 시장에 안착한다”라며 “중국 정부는 자국 팹리스 제품을 쓰는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는데, 한국도 국산 팹리스 칩을 쓰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정 이상 기술력을 지닌 회사의 칩이 고객과 만날 수 있게끔 돕자는 건데, 소규모 지원금을 다수에게 뿌리는 것보다 이 편이 ‘옥석 가리기’도 된다는 얘기다.

‘메모리 잘하는 비메모리’ 딥엑스

35.5°C. 딥엑스의 AI 반도체 ‘DX-M1’가 한창 구동 중일 때 온도다. 최근 엔비디아 블랙웰 발열 논란에서 보듯, AI 가속기가 뿜어내는 열은 서버 손상과 성능 저하로 이어지는 최대 난제다. 그런데 딥엑스는 올해 국내외 반도체 전시회에서 M1의 ‘버터 벤치마크(성능 측정)’로 화제를 모았다. 경쟁사 칩은 작동 5분 만에 60°C 열을 뿜어 버터가 형체도 없이 녹는데, M1 위의 버터는 그대로다. 딥엑스의 ‘저전력·저발열’ 기술력을 증명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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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엑스 김녹원 대표가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2024 전시회에서 부스 방문객들에게 자사 반도체 성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딥엑스

딥엑스는 브로드컴·시스코·애플 엔지니어 출신 김녹원 대표가 2018년 창업한 AI 반도체 스타트업이다. 버터 벤치마크로 업계를 놀라게 한 M1은 연내 양산해 내년 초 고객에 공급한다. 지난 8월 삼성파운드리 5나노 공정 테스트(MPW)에서 87% 수율이 나왔고, 양산 수율은 91~94%를 예상한다. M1은 폐쇄회로(CC)TV 여러 대 영상과 언어를 분석해 편의점·마트 같은 유통업과 물리 보안에 활용된다. 100대 이상 CCTV를 한번에 통제하는 AI 서버용 칩 DX-H1도 내년 초 양산 계획이다.

지난달 만난 김녹원 대표는 “메모리를 잘 쓰는 게 딥엑스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열을 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LPDDR을 사용해 발열을 잡고, 고가의 S램을 경쟁사의 4분의1 이하로 써서 제조 단가를 잡았다”는 것. 메모리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빠른 AI 연산을 수행하는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김 대표는 “한국은 메모리 강국이라 학부에서부터 메모리 설계와 원리를 많이 배우고 엔지니어들의 메모리 이해도가 높은데, 이는 데이터 이동량이 막대한 AI 시대에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가 애플 반도체 수석 연구원 시절에도 ‘메모리 잘 쓰는 엔지니어’라는 평을 받았다는 것.

딥엑스는 지난 5월 진대제 회장의 스카이레이크 등으로부터 1100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LG유플러스와 함께 전용 온디바이스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창업 1~2년차에 AI 반도체 국가과제를 수주해 개발한 기술이 지금 다 상용화됐고, M1을 양산하기까지 삼성 파운드리와 국내 디자인하우스가온칩스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라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도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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