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민주주의 지키겠단 마음에…" 묵직한 사회과학 책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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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무명서점’을 운영 중인 정모(45)씨는 ‘12‧3 비상계엄’ 이후 부쩍 달라진 손님들의 수요를 실감하고 있다. 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하는 사회나 정치 분야 도서를 찾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다. 이에 정씨는 지난 19일 도서 『내전 대중혐오 법치-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주제로 온라인 북토크를 열었다. 이날 북토크에선 9명의 독자가 앞으로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정씨는 “제주에 여행 온 손님들 대부분은 소설이나 에세이 등 흥미 위주의 책을 구매해 가시고, 어렵고 두꺼운 사회과학 서적은 잘 안 산다. 그런데 최근엔 손님들 반응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다룬 책들을 펼쳐 보거나 선물을 한다며 추천해 달라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이던 사회과학 분야 도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권성우(27)씨는 “최근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 플라톤 『국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등 정치철학 고전을 읽는 4회차짜리 모임을 열었다”며 “계엄 이튿날 모든 회차별 정원 20명이 꽉 찼다”고 했다.
대학생 최건호(27)씨도 계엄 다음 날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샀다. “이번 계엄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가진 공직자로서 자질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 같다”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는 이유를 댔다. 서울도서관에서 유시민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읽고 있던 이모(26)씨는 “계엄 이후 한국 정치에 관심이 생겼고, 앞으로 민주주의 지켜야겠단 마음에 관련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도 자녀를 위해 관련 도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6년 차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윤정(40)씨는 어린이용 민주주의 교육 도서를 읽고 아이들과 생각을 나눈 독서 활동 자료를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열 명 넘는 부모가 자료를 신청했다. 이씨는 “독서를 하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느꼈던 자유를 누리려면 늘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회원 수 약 6만명의 온라인 독서교육 카페에도 '초2 민주주의 도서 추천해달라, 나라가 어수선하니 아이가 궁금해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엔 어린이용 도서를 추천해주는 댓글이 줄이었다.
실제 사회과학 서적들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작품 일색인 최근 도서 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정치·사회분야 도서 판매량은 계엄 전인 11월 22일~지난 3일 대비 4~15일 15.2% 신장했다. 계엄 전 민주주의 키워드 관련 판매량 상위 목록에도 없던 스티븐 레비츠키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계엄 이후 열흘간 판매량 1위 도서로 올라섰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내용이 어려운 사회과학 서적은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계엄이 선포되고 내란, 쿠데타 등 단어가 흔히 쓰이다 보니 이 개념을 탐구하려는 흐름이 생겼다”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계엄으로 모든 문화적, 사회적 성과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회적 위기의식이 최근 ‘텍스트힙’ 현상과 맞물리면서 관련 도서 인기로 이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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