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인, 계란 비유하면…흰자는 유교, 노른자는 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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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무속’이다. 삶은 계란에 비유하면 현대성의 껍질을 두르고 있을지라도 흰자는 유교, 노른자가 무속이다. 어떤 제도도 문화적 습속을 이기지 못하는데, 한국은 반만년 뿌리 깊은 무속을 청산하긴커녕 최근 들어 심화되고 있다.”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등을 저술한 동양철학자 임건순(43)씨의 진단이다. 내년 초 무속 정치와 한국사회를 주제로 한 신간을 준비 중인 그는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1987년 체제 덕에 형식적 민주주의가 발전했고 선진국을 따라 사다리 올라타기 경주를 해왔지만, 이것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샤머니즘이 득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1987년 체제를 분기점으로 보는 이유가 뭔가.
- “1980년대까지 한국은 조선적 전통과 거리가 멀게 상인(기업인)과 군인이 앞장서서 나라의 부를 축적하고 근대화를 주도했다. 87년 정치 민주화와 함께 경제적으로도 먹고 살만해지면서 오히려 조선의 습속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보인다. 선진국을 따라 달려 왔는데, 이제 더 이상 따라할 모델이 없어지니 윤리·철학의 빈곤이 드러나는 셈이다. 무속의 특징이 ‘현세주의’인데, 한국인들은 현실의 소원성취, 특히 물적 성공을 최우선시한다. 이를 교묘히 파고드는 역술‧주술사들이 공적 영역까지 활개치는 게 2024년 한국 자화상이다.”
- - 우리 사회는 근대화‧합리화를 지향해왔는데.
- “겉으로만 근대화‧합리화했지, 속은 안 그랬다. 근대란 건 권리도 의무도 개인이 주체이고 판단의 주체 역시 개인이다. 그런데 폐쇄적 농경사회에서 유교와 무속을 신봉하고 살아온 한국인들은 개인주의에 쉽게 용해되지 못한다. 굿판에서 평소 쌓인 감정적 억압을 해소하듯, 토론이나 이성보다 정서적 일체감을 높이 산다. 월드컵 응원, 아이돌 팬덤 같은 집단흥분 현상도 무속문화의 일종이라고 본다. 무속 회귀가 아니라 그간 잠재됐던 게 표출되고 있을 뿐이다.”
- - 정치권에서도 무속 신봉이 두드러진다.
- “어떤 종교이든 맹신하는 건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치의 무속화다. ‘정치 무당’ 김어준이 대표적이다. 2012년 대선 패배로 무력감에 절었던 범진보 진영에서 무속 화법을 발판으로 세를 확장하고 ‘세월호 음모론’ 등을 주입시켜 정치 교주 반열에 올랐다. 이를 보고 벤치마킹한 극우 유튜브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들이 퍼뜨린 부정선거 망상이 현실정치까지 집어삼킨 게 12·3 비상계엄 사태 아닌가. 상대 진영을 저주하는 증오의 정치로 퇴행하는 걸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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