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형만한 아우 있다, 키에란 컬킨의 명품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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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얼 페인’(15일 개봉)에서 조울증을 앓는 백수 벤지(키에란 컬킨)는 친형제처럼 자란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돌아가신 할머니의 폴란드 고향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둘은 “1000번의 기적으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역사 투어에 참가한다.
폐 끼치기 싫어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벤지는 누구와든 쉽게 친구가 되지만 순식간에 무례하게 돌변한다. 그런데 그의 무례엔 늘 이유가 있다. 가령, 이런 경우다. 선조가 겪은 공포를 되새기는 투어를 하면서 어떻게 1등석 기차, 최고급 음식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냐고 울부짖는 거다. “투어가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가이드는 반문하지만, 정곡을 찔린 모두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리얼 페인’으로 지난해 선댄스영화제부터 주목받은 배우 키에란 컬킨(43)이 지난 5일(현지 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에 올랐다. 에드워드 노튼, 덴젤 워싱턴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서다.
‘리얼 페인’은 폴란드계 유대인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소셜 네트워크’ ‘나우 유 씨 미’)가 20여년전 폴란드의 숙모 생가를 방문한 경험을 녹여낸 자전적 영화. 처음엔 직접 맡으려 했던 벤지 역할을 넘겨준 건 컬킨이 살아 숨 쉬는 벤지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유롭고 개방적이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 우울증을 겪어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람”(아이젠버그) 말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보다 작을 수 있지만, 개개인에겐 진정한 고통’을 탐구하는 이 영화를 누구보다 이해할 적임자도 컬킨이었다. 7살 때 형 맥컬리와 함께 영화 ‘나 홀로 집에’(1990, 사촌동생 풀러 역)로 데뷔한 그는 가난한 7남매 속에 자랐다. 누나 둘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가 12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 대신 어머니 슬하에서 가족이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스타덤에 오른 형 맥컬리와 달리 영화·드라마의 조·단역을 차근차근 거친 컬킨은 유년시절 아버지에게 학대 당한 형이 추락한 시절에도 헌신적으로 형을 돌봤다. 어릴 적 아픔이 오히려 그를 더 단단한 ‘패밀리맨’으로 만들었다. 이런 면모는 영화에도 묻어난다. 벤지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늘 가족이 먼저다. 나치에 살해 당한 유대인들과 누구보다 사랑했던 할머니의 흔적 앞에 그는 진짜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담담히 나아간다.
‘리얼 페인’에서 컬킨의 호연이 놀라운 건 매 장면이 즉흥 연기처럼 이뤄졌다는 것이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사전에 대본을 숙지한 뒤 대사는 촬영 10분 전, 심지어 몇 초 전에 외운다. 처음엔 불안해하던 감독도 나중엔 이를 활용했다. 다른 투어 참가자에게 다가가는 장면, 2차 세계대전 동상 앞에서 역사를 놀이하듯 재현하는 장면 등이다. 컬킨은 “그저 벤지로서 즐겁게 지내려고 했다”고 촬영 당시를 돌아봤다.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컬킨은 “모두 아이젠버그의 놀라운 각본 덕분”이라며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그 각본을 완성하기까지 아이젠버그는 자그마치 15년을 바쳤다. 홀로코스터에서 생존해 101세까지 천수를 누린 숙모가 살던 폴란드 작은 마을 크라니스토의 생가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폴란드 루블린의 마이다네크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영화에 나온 것도 ‘리얼 페인’이 처음이다.
‘리얼 페인’은 오는 3월 10일(현지 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힌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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