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성국극단에 들어간 소년이 던진 질문...'정년이' 효과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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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드라마 ‘정년이’의 인기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동아연극상·차범석희곡상을 받은 작가 고연옥과 백상연극상을 받은 연출가 구자혜가 여성국극제작소와 함께 만든 ‘벼개가 된 사나히’가 그 주인공.
여성국극은 창극(전통 음악극)의 한 종류로 모든 캐릭터를 여자 배우가 맡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오페라’로 불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청실홍실’, 투란도트의 번안극 ‘햇님과 달님’ 등으로 1950년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니마이’(남주인공)를 연기하는 여자 배우들은 소녀팬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벼개가 된 사나히’는 남역 배우를 꿈꾸며 여성국극단에 입단한 ‘소년’의 성장기다. 성소수자인 소년은 ‘산마이’(바람잡이), ‘가다끼’(악역) 등 남녀 배역을 두루 거치며 니마이로 성장한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른 그를 기다리는 것은 꿈 속의 병든 왕. 소년의 꿈 속에서 왕은 “여자를 베개로 삼아야만 잠에 들 수 있는 병에 걸렸다”며 소년에게 자신의 베개가 될 것을 강요한다. ‘니마이 중의 니마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의 추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본 소년은 생각한다. 니마이의 말로가 고작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베개가 되겠다고.
극본을 쓴 고연옥 한예종 연극원 교수는 “여성국극에서 ‘니마이’는 공주를 구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왕자 등 전형적인 남성 영웅으로 그려진다”며 “소년은 니마이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니마이가 된다는 것은 탐욕에 찌들어 남을 짓밟는 일일 수 있음을 깨닫고 이를 포기하는 다층적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성소수자 소년이 품는 질문을 통해 여성국극이 추구해 온, 더 나아가 세상이 요구하는 성별 이분법에 질문을 던진다. 인간을 베개 삼아야 잠을 잘 수 있는 왕의 이야기는 여성국극 ‘눈 우에 피는 꽃’에서 가져왔다고.
여성국극 배우들이 주축이 된 극이지만 여성국극보다는 연극에 가깝다. 연극 제작진이 제작을 주도했고, 무대 역시 연극적 문법을 따른다. ‘소년’을 연기한 박수빈 여성국극제작소 대표는 “여성국극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권선징악-해피엔딩의 직선적인 스토리가 대부분”이라며 “주인공(소년)이 전형적 영웅이 아니라는 점에서 연극적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여성국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시도다.
여성국극제작소의 대표이자 3세대 여성국극 배우인 박수빈이 ‘소년’을 연기한다. 원로 여성국극 배우 이소자, 이미자의 원조 ‘니마이’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극은 공연예술분야에서 우수 신작을 발굴해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됐다.
공연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에서 19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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