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태극기 휘날리는 꿈을 꾸는 허미미 동생 허미오. 김현동 기자

재일동포 유도 선수 허미오(21·경북체육회)는 매트 위 실력보단 '허미미 여동생'으로 더 유명하다. 두 살 많은 언니 허미미(23)와 허미오는 일본 도쿄에서 나고 자랐는데, 허미미가 2021년 경북체육회에 입단하면서 먼저 한국 땅을 밟았다. 허미미는 입단 초기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라는 배경이 주목받았지만,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여자 57㎏급)에 이어 같은 해 파리올림픽에서 은메달(여자 57㎏급)과 동메달(혼성단체전)을 거머쥐며 이젠 당당히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언니보다 2년 늦게 한국에 온 허미오는 화려한 언니의 이력에 가렸다. 청소년(주니어) 국가대표로 활약하다 올해 생애 첫 태극마크에 획득해 정식으로 국제 시니어(성인) 무대에 도전한다. 언니처럼 한국 유도에 연착륙해 내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릴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획득해 메이저 종합대회에 데뷔하는 꿈을 꾼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허미오는 "올해는 목표한 것들을 차근차근 이뤄나가겠다. 무엇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유도를 마음껏 선보이겠다. '허미미 동생'보단 '허미오'라는 이름 석자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허미오는 고교 시절 일본 유도의 특급 유망주로 주목 받았다. 김현동 기자

허미오는 올해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다. 김현동 기자

허미오는 종주국 일본 유도의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고1 때 출전한 2021 전일본고교선수권 여자 48㎏급에서 2, 3학년 강자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전일본고교선수권은 일본 고교 유도 최고 권위의 대회로 1000여 명이 다투는 치열한 지역 예선을 거친다. 본선에서도 100여 명이 경쟁한다. 허미오는 1학년으로는 보기 드물게 고교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언니 허미미는 고교 땐 전국 대회 정상에 서지 못했다. 허미미는 손기술인 업어치기가 주특기지만, 허미오는 업어치기와 허리기술인 허벅다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기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미오가 2023년 경북체육회에 입단하자 한국 유도계는 "허미미를 능가하는 천재가 등장했다"며 술렁였다. 하지만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쳤다. 한국에선 원래 자신의 체급보다 한 체급 높여 52㎏급에 도전했던 게 패인이었다. 한국 특유의 체력 유도의 일찌감치 적응한 언니와 달리, 허미오는 체급을 올리고도 화려한 기술에만 의존해 힘과 체력을 키우지 못했다. 결국 청소년 대표에 머물렀다.

허미오(왼쪽)와 허미미 자매는 조력자이자 라이벌이다. 김종호 기자

언니 허미미와 함께 LA 올림픽에서 태극기 휘날리는 꿈을 꾸는 허미오. 김현동 기자

허미오는 "한국에서 2년 만에 고속성장한 언니를 보면서 나도 빠른 시간 내에 적응하고 결과까지 내고 싶어서 체급을 올렸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다. 조급한 마음으로 훈련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을 제때 보완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유도는 만 20세까지만 청소년 대표로 뛸 수 있다. 2004년생으로 올해 21세가 된 허미오는 이제 국내외에서 모두 성인 선수로 분류된다. 정식 성인 무대 데뷔를 앞두고 그는 다시 48㎏급으로 체급을 내리는 승부수를 뒀다. 마침 여자 48㎏급은 강자들이 은퇴하면서 국가대표 1진 자리가 공석이다.

2025년도 국가대표 선발전은 오는 3월 10일 충남 보령에서 열린다. 허미오는 "일본을 제패했던 체급도 가장 자신 있는 체급도 48㎏급이다. 이제부턴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고 1등만 할 자신이 있다. 태극마크도 아시안게임 출전권도 따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와 고교 시절 경쟁하던 선수 상당수가 현재 일본 유도 국가대표가 됐다. 아마 나를 국제 대회에서 만난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회를 앞두고 힘겨운 감량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그는 53㎏다. 중량급 선수와 달리 경량급 선수에겐 1~2㎏을 빼는 것도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 허미오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이겨낼 자신이 있다. 부담스러운 정도의 체중 감량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낸 허미오. 사진 IJF

지난해 아시아 청소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딴 허미오. 사진 대한유도회

허미미(4학년)처럼 일본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2학년)에 재학 중인 허미오는 와세다대 유도부에서 언니와 함께 훈련 중이다. 허미오는 "언니는 훈련 땐 응원과 조언해주고, 훈련 후엔 맛집에서 밥을 사준다. 올림픽 메달을 땄을 때 내가 무척 부러워했는데, 언니가 오히려 '나고야 아시안게임과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자매가 함께 나가서 태극기 휘날리는 것으로 삼고 있다'며 격려했다"고 말했다.

허미오는 이어 "삼겹살과 김밥을 가장 좋아하고, BTS나 십센치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한국말도 잘 알아듣고, 김정훈(경북체육회) 감독님과 문자 메시지로 수다를 떨 정도로 한글도 익숙하다. 일본 국적도 재작년에 포기했다. 태극마크만 달면 된다. 빨리 진천선수촌에 들어가 실력을 갈고닦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