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취임사에 '매니페스트 데스티니'…루스벨트 뻬고 잭슨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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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2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초상화 앞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별들로 향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매니페스토 데스티니)’을 이어나가겠다”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는 취임사에서 ‘명백한 운명’이란 생소한 용어를 꺼냈다. 19세기 중·후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상징하는 용어로, 미국의 팽창주의가 운명적인 일이란 것을 주장하기 위해 다소 철 지난 얘기를 거론한 셈이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걸어둔 프랭클린 루스벨트(제32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없애고, 앤드루 잭슨(제7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다시 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1기 재임 시절에도 집무실에 잭슨 전 대통령 초상화를 걸어뒀는데, '명백한 운명'이 가장 유행하던 시기가 바로 '잭슨 시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파나마 운하 운영권 복구와 화성 탐사 재개 등 패권 전략을 강조했다. 트럼프가 이런 자신의 뜻을 강조하고자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명백한 운명”은 1845년 뉴욕의 잡지 편집자인 존 오설리번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당시 미국 잡지 및 민주적 리뷰에 실린 에세이에서 텍사스 병합을 미국이 대륙을 지배하는 “명백한 운명”의 목적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텍사스 병합은 텍사스 공화국이 자발적으로 미합중국에 서명한 사건으로, 합병 직후 이를 둘러싼 국경 분쟁이 멕시코-미국 전쟁의 단초가 됐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17세기 청교도 지도자 존 윈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가 있다. 로널드 레이건과 버락 오바마 등 역대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인용한 바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DC 의사당 내 중앙홀(로툰다)에서 열린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는 중국에 파나마 운하를 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파나마에 줬으며, 이제 다시 가져올 것”이라며 “별들로 향한 ‘명백한 운명’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노골적으로 파나마 운하에 대한 운영권 복구를 요구해왔다. 트럼프는 지난 1999년 운하의 최종 이양에 대한 약속을 파나마가 어겼으며, 이 운하의 운영을 중국에 넘겼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파나마 정부는 “현재도, 앞으로도 파나마의 것”이라고 반발했다.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82km 길이의 인공 수로다.

트럼프는 그린란드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며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도 밝힌 바 있다. 그린란드는 북극의 가장 큰 섬으로, 우주비행사들의 화성 탐사 훈련장소다. 트럼프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이름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변경하고,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키는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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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지난 6일 피고인에 대한 행정명령과 사면을 발표하면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보낸 편지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별들로 향한 명백한 운명”은 대륙을 넘어 우주로의 영토 확장을 꿈꾸는 트럼프의 야심 찬 목표도 내포한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화성에 성조기를 꽂도록 하겠다”며 1기 때부터 강조해온 화성 탐사 재개를 언급했다. 이번 공언으로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추진 중인 스페이스X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스페이스X는 화성을 개척해 인류가 이주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로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을 개발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날 트럼프의 ‘명백한 운명’ 발언을 두고 “트럼프의 영토 확장에 대한 구상을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짚었다. 캐나다 매체 내셔널 포스트는 이 용어를 ‘먼로 독트린’에 빗대면서 “북미 대륙이 미국의 통제 하에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먼로 독트린은 제5대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1817~1825년 재임)가 1823년 연두교서에서 밝힌 미국 외교정책의 원칙으로, 유럽 등 외부 세력의 아메리카 대륙 간섭을 거부하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 패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최근 1면에서 트럼프의 서반구 패권 확보 계획을 도널드와 먼로 독트린를 합성한 용어인 ‘돈로 독트린’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트럼프 집무실도 ‘잭슨 시대’

트럼프가 잭슨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그의 초상화를 집무실에 건 것도 상징적인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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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 앤드류 잭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렸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잭슨 전 대통령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군인 출신인 잭슨 전 대통령은 지금껏 미국에서 전쟁 영웅으로 불렸고, 미국인들에겐 20달러짜리 지폐에 그려진 인물로 더 친숙하다.

하지만 1830년 제정된 ‘인디언 추방법’에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 강제 이주 정책을 시행해 비판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잭슨 전 대통령은 미시시피강 동쪽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아칸소와 오클라호마의 보호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강제 과정에서 4000여명의 원주민이 추위와 전염병 등으로 숨졌다. 그의 원주민 강제 이주 정책과 트럼프의 반(反)이민정책 기조가 닮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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