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럭셔리 브랜드들의 디자이너 지각 변동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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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많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해다. 지난해 여러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대규모의 자리바꿈을 한 뒤, 올해 새로운 브랜드에서의 컬렉션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샤넬을 비롯해 보테가 베네타·셀린느·발렌티노·로에베·펜디 등 유수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이동했다. 이들이 맡은 패션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브랜드의 모든 창조적인 분야를 책임진다. 사실상 브랜드 성패를 좌우하는 자리다. 누가 CD가 되느냐에 따라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브랜드가 갑자기 트렌드의 정점에 서기도 하고, 소위 ‘잘 나가던’ 브랜드라도 디자이너 교체 이후 대중의 외면 속에서 쇠락의 길을 걷기도 한다. 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경우엔 오랜 시간 구축된 브랜드 정체성을 지켜내야하기 때문에, 유명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색을 내기 어렵다.
디자이너의 유명세보다는 브랜드와 디자이너, 둘 사이의 합이 더 중요한 이유다. 이런 까닭일까. 최근엔 유명 패션 브랜드일수록 오히려 무명에 가까운 중견 신인급 디자이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구찌에 오랜 부흥기를 안겨줬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다. 2015년 그가 구찌의 CD로 임명된 뒤 모기업인 케링 주가는 79%나 상승했다. 케링 매출의 60%가 구찌에서 발생했고, 2022년 퇴임할 때까지 구찌와 케링의 부흥을 이끈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었다. 보테가 베네타에 활기를 불어넣은 다니엘 리에 이어 CD가 된 마티유 블라지는 올해 초 샤넬로 이직하며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자리의 주인공이 됐다. ‘보테가를 거치면 스타가 된다’는 업계 풍문이 사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의 빈자리는 루이스 트로터가 채웠고, 마이클 라이더는 셀린느로, 사라 버튼은 지방시로 자리를 옮겼다. 2025년 주요 브랜드의 디자이너 변화를 정리했다.
화제성 1위 ,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자리가 드디어 채워졌다.”(뉴욕타임스)
샤넬 패션 부문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아티스틱 디렉터 이야기다. 주인공은 디자이너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 그의 임명 소식은 지난해 12월 발표됐는데, 6월 칼 라거펠트의 뒤를 이은 버지니 비아르가 사임한 뒤, 약 6개월간 세계 패션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자리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마티유 블라지는 지난 4년간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를 이끈 뒤, 올해부터 프랑스의 거대 패션 하우스를 책임지게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데뷔는 올해 10월 파리 컬렉션 쇼다. 오는 4월 공식 합류해 샤넬의 모든 패션, 쿠튀르 및 액세서리를 총괄하며 1년에 10개의 컬렉션을 제작하게 된다. 그 사이에 있을 1월·7월의 쿠튀르 컬렉션과 3월의 레디-투-웨어 쇼는 샤넬 스튜디오 디자인 팀이 담당한다.
1984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벨기에의 예술학교 브뤼셀 라 캉브르를 졸업한 뒤 라프 시몬스, 메종 마르지엘라, 셀린느, 캘빈 클라인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의 재능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보테가 베네타의 CD를 맡으면서부터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서 과감한 실험 정신을 펼치며 브랜드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냈다. 샤넬 패션 부문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는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에 현대성과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타 제조기 보테가 베네타는 루이스 트로터
마티유 블라지를 보낸 보테가 베네타는 여성 디자이너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를 브랜드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까르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지 2년 만에 보테가 베네타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그간 트로터가 보여준 패션 세계를 떠올려보면 오히려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 뉴캐슬 폴리테크닉에서 수학한 그는 갭, 타미 힐피거, 캘빈 클라인 등에서 경력을 쌓고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셉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브랜드를 키웠다. 2018년엔 조셉의 성공을 발판으로 라코스테로 자리를 옮겼고, 5년 뒤엔 까르뱅의 디자이너가 되어 조용하고 관능적인 디자인으로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오는 1월 말 보테가 베네타에 공식적으로 합류하는 그에 대해 브랜드 측은 “우리의 창의적인 여정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하는 발렌티노
이탈리아 쿠튀르 패션의 대명사 발렌티노는 지난해 3월 말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를 수장으로 앉히고 새로
운 컬렉션을 쏟아내는 중이다. 로마 외곽 몬테 사크로에서 태어나 로마 예술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펜디에서 프리다 지아니니와 일하며 가죽 제품을 담당하는 수석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2002년 당시 구찌의 CD였던 톰 포드의 눈에 띄어 구찌로 자리를 옮겼고, 소재 디자인 사무실에서 핸드백 디자인을 담당했다. 이후 2011년엔 당시 구찌 크리 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어소시에이트로 승진했고, 2014년 프리다가 구찌를 떠난 뒤 CD로 발탁돼 브랜드의 부흥기를 만들어냈다. 발렌티노엔 지난해 부임해 2025년 봄·여름 컬렉션부터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셀린느, 다시 돌아온 마이클 라이더
셀린느는 약 7년간 브랜드를 이끌어온 에디 슬리먼이 퇴임하고, 미국 디자이너 마이클 라이더(Michael Rider)가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가 됐다. 그는 올해 초부터 여성복, 남성복, 가죽 제품 및 액세서리부터 쿠튀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셀린느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활동한다. 발렌시아가에서 경력을 시작한 마이클 라이더는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와 함께 일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2008년 셀린느에 입사한 그는 2018년까지 브랜드의 기성복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며 당시 셀린느 CD였던 피비 파일로와 함께 브랜드 스타일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7년 만에 다시 셀린느로 돌아온 것. 가장 최근엔 폴로 랄프 로렌의 CD로 활동했다.
킴 존스 떠난 펜디엔 앤더슨이?
기존 디자이너는 떠났지만, 아직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곳이 많다. 디올 남성복과 펜디 여성복의 두 브랜드 디렉터를 겸직했던 킴 존스가 펜디 여성복 디렉터 직에서 물러났지만, 아직 후임자는 발표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최근 로에베의 모든 공식 행사에서 제외된 조나단 앤더슨이 11년간 몸담은 로에베를 떠나 펜디로 자리를 옮길 것이란 소문이 돌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또 하나의 퇴임 소식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들려왔다. 10년간 브랜드의 창의성을 주도해온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브랜드를 떠났다. 지난 12월 12일 갈리아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직접 퇴임 소식을 알렸다. 그는 “내가 창의적인 목소리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렌초 로소(OTB 회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나는 늘 속죄할 것이며,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아직 그의 후임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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