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장고 방어, 중요 보물만 빼내"…한글박물관 화재 가슴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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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화재 상황 회의 때 (소방당국에) 유물이 1층(수장고)에 있으니 최대한 보호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장고 방화벽이 철저하긴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큰불이 소강상태일 때 중요 유물만 빼냈다. 인명 피해가 없어 천만다행이다.”(국립한글박물관 안승섭 기획운영과장)
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발생한 화재가 약 4시간 만인 낮 12시 31분 사실상 진압되면서 박물관 관계자들은 아찔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월인석보 권9, 10’과 ‘정조 한글어찰첩’, ‘청구영언’ 등 보물 9건을 포함해 박물관 소장 자료 8만9000여점 대부분이 지류(종이)물에 해당한다. 박물관은 지난해 10월 14일부터 ‘교육공간 조성 및 증축’ 공사에 따른 휴관 상태로 이날 관람객은 없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건물(지하 1층~지상 4층)의 3층과 4층 사이 철제계단 절단 작업 중에 불꽃이 튀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소화기로 불길이 잡히지 않자 119로 신고했고 즉시 출동한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50분 만에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장비 76대와 인력 262명이 투입돼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불길은 4층까지 번졌다. 4층에 쌓인 공사 자재로 인해 소방 인력 진입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 사이 박물관 비상연락망이 가동되면서 강정원 관장과 안승섭 기획운영과장, 김희수 전시과장 등 직원들이 달려 나왔다. 이들은 유물 수장고가 있는 1층까지 불길이 번지지 않게 노력해달라고 당부하고 지켜보다 오전 10시쯤 결단을 내렸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중요 유물만 우선 빼내기로 한 것.
“수장고가 이중삼중의 방화철문으로 이뤄져 있고, 화재가 감지되면 하론가스(화재진압용 소화약재)가 자동분사되지만 그 경우엔 산소가 차단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1층까지 화재가 미치지 않고 마침 윗층 불길은 소강상태라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소방요원들과 함께 수장고로 들어가 국가 지정문화재급 26건(257점)만 인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이동시켰다. 유물은 모두 안전하다.”
상황 종료 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희수 과장 등이 전한 내용이다.
불길은 전시실이 있는 3층과 4층을 다 태운 뒤 3시간 51분 만에 사실상 진압됐다. 다만 건물 내에 쌓인 가연물을 들어내고 잔불 등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려 화재 발생 6시간 42분 만인 오후 3시 22분에서야 완전히 진화됐다.
박물관 안에 있던 작업자 2명이 구조됐고 4명이 대피한 가운데 소방대원 1명이 낙하사고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2014년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은 개관 10년을 맞아 1층 개보수 및 4층 공간 증축을 마치고 연내 재개관할 예정이었다. 공사로 인해 모든 소장품은 수장고로 옮겨진 상태였다. 박물관 측은 이번 화재에도 연중 일정엔 변동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30분께 화재 현장에 도착해 진압 상황과 피해 현황 등을 확인한 뒤 국민들께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유 장관은 “문체부 산하에 다중문화시설이 많은데 철저하게 점검하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 걱정 끼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정원 관장은 “경찰 조사를 통해 화재사고 원인을 자세히 밝히는 한편 안전대책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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