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도체 업계 “주 52시간제론 HBM 고객 요구 못 맞춰”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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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경쟁력엔 시간이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가 핵심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객 맞춤형 제품일수록 한국과 반대 시간대 지역의 고객 요구는 점점 더 많아질 텐데 (경직된 근로시간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불리함을 안고 있다.”
3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 제외’ 토론회에 나온 김재범 SK하이닉스 R&D담당 부사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김태정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도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개발(R&D) 직원의 90%가 1개월 단위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하는데, 월말이 되면 (52시간이 다 차서) 출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 그나마 ‘집중 R&D’를 시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 R&D 직무에는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예외조항을 두자는 내용의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이 8개월째 계류된 가운데, 법안에 반대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토론회를 주최하자 기업들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주 52시간제에 갇혀 옴싹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의 현실을 봐 달라”고 호소했다. 토론회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 4명과 전국삼성전자노조 등 노동계 측 4명이 참석했다. 2시간30분 동안 1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대표가 토론을 진행했다.
기업들은 현재 상태로는 반도체 산업의 기존 경쟁력을 지키는 것은 물론, 미래 시장에 대비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반도체 개발에는 수없이 많은 실험과 검증, 실패와 반복의 시간이 필요한데 현재는 고객 요구를 맞추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HBM 같은 ‘커스텀 메모리’ 시대엔 고객 요구가 더 다양해진다”며 주 52시간제와 반도체 산업의 흐름이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토론이 길어지자 이 대표가 “필요한 이야기만 하자”고 언급하자 삼성의 김 상무는 “저에게 5분의 시간이 있다”며 끝까지 할 말을 다했다.
기업들이 이토록 절실한 이유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고, HBM도 최근 중국 딥시크 쇼크 이후 시장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TSMC(점유율 64.9%)는 R&D 인력을 24시간 3교대로 돌리는 ‘나이트 호크 프로젝트’로 성장했고, AI 칩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 역시 ‘압력솥’이라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이날 노동계의 반발은 거셌다.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이 혁신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광현 SK하이닉스 이천노조 부위원장은 “SK하이닉스는 (주 64시간 근무까지 가능한) 특별연장근로를 안 하고도 최첨단 HBM을 엔비디아에 지속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김 부사장은 “현장에선 (특별연장근로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지만, 구성원 개별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 등 절차로 실제 활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장관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경직된 제도라 이용하지 않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이 대표는 연봉 1억3000만~1억5000만원 이상 전문 연구 인력을 대상으로 동의하에 한시적으로 주 52시간제 예외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연구개발 분야의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며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란 말에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노동계 반발에는 “이 정도는 합리적”이라고 받아쳤다. 다른 직군·산업으로 예외가 확대될 수 있다는 노동계 우려에도 “의심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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