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찬욱 "감옥 갈 각오로 만들었다"…'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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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영화 내용이 우리 젊은 세대한테 똑같은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슬픈 일이죠. 개봉 50주년 때는 옛날이야기처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대표작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2000)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영화감독 박찬욱(62)이 밝힌 소회다.
개봉 25주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CJ ENM 비저너리 선정작 기념 상영 #박찬욱 감독, 송강호·이병헌·이영애·김태우 #"25년만 완전체"…여전한 분단현실 "슬픈 일"
‘JSA’는 올해로 80년이 된 분단역사의 아픔을 남북한 초소 병사들의 우정과 비극에 새긴 작품. 4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 박찬욱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그는 “베를린영화제(제51회, 경쟁부문 진출) 등 외국에서 이 영화 상영을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실제 판문점에서 영화를 찍었냐는 거다. 항상 ‘실제 판문점에서 찍을 수 있었다면 이런 영화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답해왔다”면서 이같이 덧붙였다.
‘JSA’의 CJ ENM 비저너리 선정을 기념해 마련한 이 행사엔 박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58), 이병헌(55), 이영애(54), 김태우(54) 등 주연 배우가 “25년만에 완전체”(이영애)로 뭉쳤다. 20대였던 ‘막내라인’ 남성식 일병 역의 김태우, 인민군 정우진 역 신하균도 어느덧 50대가 됐다(신하균은 개인 사정상 이날 불참했다). GV가 생중계된 4개관을 포함해 총 5개 상영관의 900여석 객석이 일반 관객과 당시 영화에 참여한 배우 및 스태프, 그 가족 등으로 가득 찼다.
박찬욱 "90년대 국가보안법, '감옥행' 각오 속 제작"
비저너리는 올해 콘텐트 사업 30주년을 맞은 CJ ENM이 한국 콘텐트 역사에 변곡점이 된 작품을 재조명한 것으로, 영화 부문에선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 ‘베테랑’(2015) ‘극한직업’(2019) 등도 포함됐다. 특히 ‘JSA’는 “한국영화계에서 감독의 예술적 비전과 상업적 확장성을 겸비한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동력이 된 작품”(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으로 평가받는다.
박상연 소설 『DMZ』를 토대로 한 박 감독의 3번째 장편영화로, 분단 역사를 휴머니즘적으로 그려 전국 58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분단 소재 첩보물 ‘쉬리’(1999)가 600만 흥행을 거둔 데 이어서다. ‘JSA’는 이후 남북한 관계를 다룬 한국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 감독은 감옥까지 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90년대 후반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가능한 법 조항(국가보안법)의 구속을 받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북한 군인과의 교류, 우정 소재가 고무‧찬양이라든가, 뭐든지 걸리면 걸릴 수 있는 때였다. 명필름(제작사)과 그런 일(감옥행)이 벌어질 수 있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만들었다”면서다. 송강호는 “명필름이 엄혹했던 시절, 한국영화 발전의 비전을 갖고 과감하게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서 한국영화의 지금,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나, 되돌아볼 기회”라고 쓴 소리도 했다.
흥행 연패 박찬욱·이병헌…송강호는 한 차례 거절
차기작 ‘올드보이’(2003)로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칸느 박’이란 애칭을 얻은 박 감독에겐 ‘올드보이’보다 먼저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 ‘3인조’(1997)가 연달아 흥행 참패했던 그는 “3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유작이 될 거란 절박한 마음이었다”며 “절박한 사람은 저뿐만 아니었다. 이병헌 씨도 영화 하는 족족 실패했기 때문에…”라 덧붙였다.
‘JSA’ 이후 옴니버스 단편 ‘쓰리, 몬스터’(2004)을 거쳐 최근 촬영을 마친 올해 개봉 예정작 ‘어쩔수가없다’까지 박 감독과 인연을 맺어온 이병헌은 ‘JSA’를 “처음 ‘흥행배우 이병헌입니다’ 인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영화”로 돌아봤다. “개봉 당시 흥행의 맛을 처음 알았다. 극장에서 ‘JSA’를 40번 정도 봤다. 관객과 함께 웃고 우는 경험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인샬라’(1997)로 흥행에 고전했던 이영애도 ‘JSA’ 흥행에 이어 박 감독과 재회한 ‘친절한 금자씨’로 백상예술대상, 스페인 시체스영화제 등 국내외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박 감독과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박쥐’(2009), ‘복수는 나의 것’(2002) 등을 함께해온 송강호는 ‘JSA’로 처음 만났을 당시 출연을 한차례 고사하기도 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완벽해서”란 이유다. “촘촘하게 밀도감이 꽉 짜인 구성이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시나리오였다. 한국영화가 이런 걸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써 놓고 (결과물은) 이상한 영화가 될 거라 생각했다”고 운을 뗀 그는 “‘3인조’를 재밌게 봤고, 명필름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박 감독의 품격에 믿음이 가서 출연하게 됐다”며 “’JSA’는 배우 생활하며 가장 그리워할 만한 첫 번째 화양연화(花樣年華)”라 돌아봤다.
타란티노 "20년간 최고 엔딩"…JSA, 퀴어영화 될뻔
참혹한 비극 이후 주인공들의 행복했던 과거를 한 컷의 판문점 사진에 담아낸 흑백 사진 엔딩은 할리우드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013년 “지난 20년간 가장 멋진 엔딩”에 꼽기도 했다. 이날 자리에선 다른 버전의 엔딩 비화도 공개됐다. 박 감독에 따르면, 살아남은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오경필 중사(송강호)를 만나러 아프리카로 가는 장면이다. 극 중 남북한 중재를 맡은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의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이영애)이 한국전쟁 당시 제3국행을 택한 인민군 전쟁포로 출신 아버지의 요양원을 찾아가는 버전의 엔딩도 있었다.
남북한 병사의 우정을 넘은 동성애적 감성도 고려했지만, 제작사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박 감독은 “‘JSA’를 21세기에 만들었다면 그럴 수도(퀴어영화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며 “지금 영화에서도 김태우‧신하균 씨 눈빛을 자세히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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