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치독일에 선전포고 한 영국, 반려동물 주인들이 향한 곳[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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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
힐다 킨 지음
오윤성 옮김
책공장더불어
1939년 9월 1일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은 이틀 뒤 대독 선전포고를 하고 침착하게 전쟁에 대비했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역사다.
당시 영국 반려동물들은 ‘9월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날벼락을 맞았다. 전쟁 선언 나흘 만에 고양이와 개 약 40만 마리가 희생됐다. 어떤 연구자는 75만 마리로 추정하기도 한다. 동물병원 앞에는 반려동물을 안락사시키려는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수백 미터에 걸쳐 줄을 섰다. 동물 마취와 안락사에 쓰이는 클로로포름은 금세 동이 났다. 동물원의 사자‧코끼리‧뱀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달초 영국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한 남성이 개들을 태운 손수레를 밀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옥스퍼드대 대중역사학 교수로 동물권과 동물사, 개인과 대중의 문화사를 연구해온 지은이는 이 비극을 뼈대 삼아 전쟁 기간 동물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은이는 누구도 강요나 권유를 하지 않았고 이듬해 봄까지 공습도 접전도 없었는데도 반려동물 주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결정을 했다는 데 주목한다. 전쟁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하고, 반려동물들이 폭격이나 아사 위기를 맞기 전에 미리 이별하는 게 낫다는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 때문으로 추정된다. 인간 공동체 사회에서 나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호사를 누릴 수 없다는 심리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 기간 중 동물들의 새로운 쓰임새와 가치가 드러나면서 이 비극은 동물과 인간의 동반관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런던 배터시 동물보호소의 유기견들은 각 기관과 민간에 분양돼 순찰 등 지원활동을 펼쳤다. 리버풀 민간방위대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독일셰퍼드 제트는 폭격 피해자 수색‧구조 활동으로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동물무공훈장’인 디킨 훈장을 받았다. 테리어 잡종견 립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1940년 런던 대폭격 당시 무너진 건물에 깔린 사람을 숱하게 구조했고, 방공호의 피란민에게 위안을 주면서 같은 훈장을 받았다.
주로 쥐잡이용으로 길러지던 고양이는 전쟁 중 폭격 피해자의 마음을 달래준 덕분에 인기 반려동물로 자리 잡았다. 전쟁 중 처칠 영국 총리 곁에는 고양이 넬슨이 함께했다.
이처럼 동물들은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당당히 역사의 일부를 이뤘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적이다. 지은이의 혜안은 역사를 보는 시각을 넓혀준다. 이 책은 해당 출판사의 ‘동물권리선언 시리즈’의 20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원제 The Great Cat and Dog Massac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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