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버스 배차간격 3배에도 증차는 ‘0’…경비‧청소노동자 “일찍 나와도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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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4시 30분쯤 30분 가량 첫차가 밀린 702A 버스 대신 742 버스 첫차를 타고 서울역 방면으로 출근하는 승객들이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이아미 기자

24일 오전 4시 8분쯤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정류장 버스 정보 안내 단말기에는 702A 버스가 34분 후 도착 예정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원래라면 버스가 도착했을 시간이다. 정류장에 모인 약 10명의 승객은 702A 버스 대신 신촌을 경유해 약 15분 더 걸리는 742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소 노동자 이모(68)씨의 하루도 약 한 달 전부터 더 일찍 시작됐다. 역촌동에서 중구 서소문동으로 출근하기 위해 이씨가 매일 이용하던 버스 702A 첫차가 40분가량 늦춰진 탓이다. 그는 “오전 4시 5분에 기상하던 걸 지금은 3시 50분에 일어나서 빙 둘러 가는 다른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며 “첫차 승객의 80% 이상이 청소‧경비 노동자인데 첫차 운행이 늦어진 데다 사람이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어서 아침마다 힘에 부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0일 첫차 운행이 지연된 첫날, 이씨는 1시간 30분이나 지각했다. 이유도 모른 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4명씩 모여 급히 택시를 잡거나 다른 경로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서대문구 영천동으로 출근하는 청소 노동자 김모(67)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702A 첫차가 밀린 뒤 더 붐비는데, 앉아서 가기 위해 캄캄한 새벽에 4정거장 거리를 걸어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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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과 서울 중구 남대문을 오가던 선진운수 702A‧702B 버스 노선이 지난달 20일 원당동까지 약 7km 연장됐다. 이는 기존 용두동 차고지가 고양 창릉신도시 부지에 포함되면서 이뤄진 조치였다. 선진운수 관계자는 “기존 차고지 인근에 대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더 떨어진 원당에 차고지를 임대해 이전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노선 조정 이후 기존 6분 정도이던 배차 간격이 15~20분 정더가 되고 혼잡도도 심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 버스정책과에는 지난 한 달 동안 702A‧B 노선 조정과 관련된 민원이 20여 건 접수됐다고 한다. 은평구 주민 A씨는 “출근 시간대에 내가 타는 정류장에서 버스가 이미 꽉 차서 무정차 통과한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면서 “아이들 개학하는 3월이 벌써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선이 길어지면 증차를 해 배차 간격을 유지해야 하지만, 한 대도 증차 되지 않으면서 문제가 커졌다. 선진운수 노조위원장은 “버스 증차는 전적으로 서울시 권한인데 27년간 근무하면서 감차는 있어도 증차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설령 증차가 되더라도 운전기사 구인난이 심각해 기사도 70~80명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이어 “버스가 조금만 늦어져도 승객들이 기사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많아 기사들 스트레스도 극심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증차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도심 교통 혼잡과 적자 누적 등을 이유로 시내 통행하는 버스의 총량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한 노선에서 증차하기 위해선 반드시 다른 노선에서 감차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에도 서울시는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과 종로5가를 잇는 106번 버스를 폐선했다. 이는 서울 동작구 등에 신규 버스 노선을 추가하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시민 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원 상황을 모니터링 해보고 불편이 지속되면 해결 방안을 강구해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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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9일 의정부시의회 의원들이 서울시에 106번 시내버스 노선 폐선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의정부시의회

강경우 한양대 ERICA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준공영제 체제에서 버스 운영 적자를 보전하다 보니 무분별한 노선 확대에 대한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총량제를 시행한 것”이라며 “취지는 이해하지만 일부 사례에서는 예외를 적용해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차 간격이 길어지면 시민들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되어 오히려 버스 이용률이 감소하고 적자가 심화할 수 있다”며 “노선 개편이나 다람쥐 버스(평일 출근길 순환버스) 도입 등 보완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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