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尹 "잔여 임기 연연 않겠다"…최후진술서 임기단축 개헌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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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여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12·3 계엄 후 84 일만, 탄핵소추안 접수 후 73일 만에 열린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에서 탄핵 기각을 요청하며 개헌 카드를 꺼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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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변론을 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윤 대통령은 이날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이라며 기각을 전제로 “먼저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개헌인 1987년 9차 개정에서 정립된 현행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를 38년 만에 개편하겠다는 뜻이다.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은 임기제 단축 개헌이나 조기 퇴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저는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임기 중반 이후에는 개헌과 선거제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또 탄핵심판 과정에서 국론이 분열된 것과 관련해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 가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이 통합될 것”이라며 “국민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하여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 점도 거듭 강조했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탄핵을 면하기 위해 조건부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방식이 아니다”며 개헌론을 일축했지만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은 결국 기각 전제 개헌에 방점이 찍혔다. 윤 대통령이 서울 구치소에서 오랫동안 육필로 작성했다는 이날 원고는 2만자 분량으로 ‘87체제’라는 단어가 세 번 ‘개헌’이 여섯 번 등장했다.
“국민에 죄송…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 넘길 것”
윤 대통령은 이날 “부족한 저를 지금까지 믿어주시고 응원을 보내주고 계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저의 잘못을 꾸짖는 국민의 질책도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고도 말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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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 입장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그간 변론에서 “(계엄 당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지난 4일 5차 변론)고 주장해온 윤 대통령이 심판정에서 국민에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탄핵소추 전인 지난해 12월 12일 담화에서도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는 했지만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는 말과 함께했었다.
“복귀할 경우 제2의 계엄을 선포할 위험한 인물”(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는 국회 측 주장과 관련해서는 “국정 업무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하여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라고도 했다. 임기 단축 개헌과 별개로 국정 관여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질서의 급변”을 언급하며 “지금 우리가 국가 노선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글로벌 중추 외교 기조로 역대 가장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하고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냈던 경험으로, 대외관계에서 국익을 지키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덧붙였다.
“野 국헌문란이 전시·사변”…트럼프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언급
그간 변론에서 밝혀왔던 계엄 정당성도 재강조했다. “계엄을 선포한 이유는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에게 국회의 망국적 독재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으니, 이를 인식하시고 감시와 비판의 견제를 직접 해주십사 하는 것이었다. 공화국의 대의제 위기에 헌법제정권력인 주권자가 직접 나서달라는 호소였다”는 주장이다.
“거대 야당은 제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대통령 선제 탄핵을 주장했고, 줄 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 왔다”며 “마치 정부를 마비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국회의 권한을 마구 휘둘러 왔다”고도 했다. 간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간첩법(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된 점, 국방 예산을 삭감한 점 등을 열거했다.
헌법상 계엄 선포 조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헌법 77조 1항)에 해당하는 야당의 “국헌 문란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투입했다. 미국이 국가비상사태인가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대통령의 결단’을 강조하는 주장도 폈다.
또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인데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과거 계엄의) 트라우마를 악용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제가 독재를 하고 집권 연장을 위해 비상계엄을 했다며 내란죄를 씌우려는 공작 프레임”이라고도 했다.“2시간 반짜리 계엄과, 정부 출범 후 2년 반 동안 정부를 마비시켜 온 거대 야당 가운데 어느 쪽이 상대의 권능을 마비시키고 침해한 것이냐”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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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5가지 쟁점도 조목조목 반박…“의원 체포 앞뒤 안 맞는 말”
헌재가 판단 기준으로 삼은 다섯 가지 위헌·위법 쟁점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계엄선포 절차 적법성’에는 “비상계엄을 위한 국무회의를 정례·주례 국무회의처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1993년 8월 13일 김영삼 대통령께서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발표했을 당시 국무회의록도 사후에 작성됐다”고 덧붙였다.
또 정치 활동을 제한한 ‘의정 활동 방해 의혹’에는 “의원과 직원의 출입도 막지 않았고 국회 의결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국회가 해제 요구 결의를 하자 즉각 병력을 철수하고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계엄을 해제했다”며 “의원을 체포하거나 끌어내라고 했다는 주장은, 국회에 280명의 질서 유지 병력만 계획한 상태에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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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4시 36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탑승한 법무부 호송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박종서 기자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32분쯤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헌재에 도착했으나, 자신의 최후 진술 직전인 오후 9시 3분쯤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후 진술에는 69분이 소요됐다. 대통령이 탄핵심판에서 최후 진술한 것으로 헌정사 처음이다. 이날 윤 대통령이 최후 진술을 마침으로써 이제 헌재의 시간이 됐다. 헌재는 변론에서 나온 증언과 증거를 평의에서 논의한 뒤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전례에 따라 2주 내 선고될 전망으로, 내달 중순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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