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면 충돌했다. 이에 따라 당초 정상회담 직후 예정됐던 두 사람의 공동 기자회견과 광물 협정 서명식은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저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국이 소중하게 여기는 (백악관) 오벌 오피스(집무실)에서 미국을 무시했다”며 “그는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설전 이후 백악관을 일찍 떠났다. 그런 뒤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대통령님과 (미) 의회, 미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우크라이나는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가 필요하며 우리는 이 때문에 함께 일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양국 정상회담이 종전 방안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남기지 못한 채 파행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김경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취재진 앞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눌 때부터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체결할 예정이었던 양국 간 광물 협정을 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큰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로 흥분되는 순간은 총격을 멈추고 (평화) 협정을 마무리하는 순간이 될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에 종전 합의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타협을 해야 하고 확실히 그도 타협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단순한 휴전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며 “안전 보장이 없으면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옛 영토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체결된 협정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자국을 침공했다면서 “그(푸틴)는 협정을 어겼다. 우리 국민을 죽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광물 협정) 문서가 우크라이나 발전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미국이 무엇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살인자이자 테러리스트다. 살인자와 우리 영토에 대해 어떤 양보도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JD 밴스(오른쪽) 미국 부통령도 대화에 끼어들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말싸움을 벌였다. EPA=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회담장 분위기가 점점 격앙되더니 격한 설전이 오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에 대해 계속 얘기하자 회담장에 자리했던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당신이 오벌 오피스(백악관 집무실)에 와서 미국 언론 앞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신은 이 회견에 초대해 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가본 적 있느냐. 우리가 가진 문제를 봤느냐”고 되물었다. 밴스 부통령은 “저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며 “미국 대통령 집무실에 와서 국가(우크라이나)의 파괴를 막으려는 (미국)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느냐”고 맞받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계속해서 확실한 안전 보장 조치에 대해 얘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언성을 높이며 “당신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 3차 세계대전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며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지지해준 이 나라(미국)에 매우 무례한 일”이라고 말했다.

밴스 부통령이 대화에 끼어들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느냐”고 묻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러 번 했다”고 응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젤렌스키 대통령을 바라보며 “당신은 이기고 있지 않고, 이기지 못한다”며 “당신은 감사해야 한다.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고도 했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 얼굴이 상당히 붉어졌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상호 존중에 기반한 정상 회담장에서 상대국 정상을 향해 “감사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는 건 상당한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두 정상은 약 50분간 진행된 공개 발언에서 설전을 벌인 뒤 현장 취재진을 내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충분히 본 것 같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정보다 이른 이날 오후 1시 40분쯤 굳은 표정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취재진이 질문을 던졌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백악관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