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동아리 4개나 가입했어요" 지팡이 짚은 '교대 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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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인천 계양구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캠퍼스 인문사회관 앞에 서 있는 이주언(20)씨. 이아미 기자

옅은 눈발이 날리는 인천 계양구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캠퍼스 교정. 개강 첫날인 4일, ‘교육의 이해와 교육 심리’ 수업을 듣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등교한 이주언(20)씨 얼굴에는 ‘교대 새내기’다운 설렘이 묻어났다. 단단히 멘 힙색 가방 안에는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작은 메모장과 펜이 들어 있었다.

주언씨는 태어날 때 입은 뇌 손상(백질연화증)으로 뇌성마비 장애가 있다. 청소년기 동안 긴 재활을 거친 끝에 올해 경인교대 초등교육과 25학번으로 입학했다. 초등 교사를 꿈꾸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는 내가 너희 엄마다’라고 말씀하시며 따뜻하게 대해 주신 선생님을 보며 막연하게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세부 전공으로는 컴퓨터교육과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전자기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인교대에서 한 번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7년 뒤 이 학교 학생으로 다시 입학하게 된 게 믿기지 않는다”며 웃었다. 넘치는 열정 덕분에 그는 기독교 동아리 3개, 야구 직관 동아리 하나 총 4개의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는 “아이들과 다양한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초등 교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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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2시쯤 인천 계양구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캠퍼스 인문사회관 4층, 뇌병변장애를 딛고 올해 경인교육대학교에 입학한 이주언(20)씨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이아미 기자

주언씨는 13살까지 휠체어에 의지해서만 생활했다. 성장기가 되면서 근육이 뼈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무릎이 굽고, 몸의 통증이 심해졌다. 결국 중학교 입학을 1년 미루고 2017년, 무릎을 펴기 위한 10여 개의 수술을 동시에 받았다. 이때부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의 인연이 시작돼 2018년 2월부터 약 4년간 이곳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거나 문구점 등에 놀러 다니는데 나는 재활하러 병원에 갔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며 “재활 과정에서 뒤꿈치를 써본 것도, 무릎을 펴본 것도 처음이라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10초 서 있기’ 등의 소소한 목표를 잡고 성취하면서 극복해 나갔다”고 말했다.

재활 결과가 좋았던 덕에 이제는 혼자 지팡이를 짚고 오가는 것도, 운전에도 능숙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한 그는 “고양시에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지하철로는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리지만, 차를 타면 30분이면 도착한다”며 “면허를 따고 가장 멀리 간 곳은 바다가 보고 싶어서 혼자 다녀온 을왕리”라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그는 재활이 한창이던 초등학생 시절이 아닌 고등학교 1학년 시기를 떠올렸다. 그는 “전엔 재활만 해도 대단하다는 칭찬받곤 했는데, 고등학교에 오니 잘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고 꿈을 찾아 공부해야 한다는 현실이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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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1시 30분쯤 인천 계양구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캠퍼스 인문사회관에서 이주언(20)씨가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아미 기자

주언씨 곁에는 언제나 어머니 고은화(55)씨가 있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주언씨의 번호가 ‘기쁨’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고씨는 “복덩어리 같은 살가운 아들”이라며 “아이와 나는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기왕 같은 길을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함께 갈 수 있을지, 자립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모든 뇌 병변 장애 아동이 주언씨처럼 성공적으로 재활 치료를 마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푸르메재단 관계자는 “주언씨는 치료사와 어머니, 본인이 삼박자를 이루며 노력한 사례”라면서 “장애 아동과 부모들은 병원 대기 시간이 길어 원하는 시기에 제때 치료받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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