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빚 더 내라" 폭탄 돌리는 정부…자영업 부채 악몽 시작된다 [2025 자영업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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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부채 문제는 과연 누가 해결해야 할까. 자영업자 스스로가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이상 정부와 금융권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각종 대책에 대해 “파국을 미루기만 하는 ‘폭탄 돌리기’식 대책”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7월과 12월에 자영업 대책들을 내놓았지만, 근본적 대책이라고 볼 만한 건 찾기 어려웠다. ▶정책자금 상환 연장 대상자 확대 ▶대출 상환기간 연장 ▶저금리 상품으로의 대환 프로그램 활성화 등 빚 상환 기한을 연기해주거나 빚을 더 많이 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울 관악구의 자영업자 이대정(52)씨는 “코로나 시국에 급한 대로 정부의 저리 대출을 많이 받았다가 빚더미에 앉아 폐업도 못 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라며 “대출 지원은 망하는 시기를 늦추기만 할 뿐 궁극적 지원은 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정원석 정책미래소상공인연구소 대표는 “대출 연장 정책은 오히려 (대출기간 확대로) 이자 부담만 가중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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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금융권은 고리대금 행태까지 보인다. 전국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잔액 중 36.9%가 연 6% 이상 고금리 대출이다. 연 5% 이상으로 확대하면 전체의 71.7%에 달한다. 연 4.68%인 은행 대출 평균 금리보다 훨씬 높다. 저축은행이나 보험업체, 대부업체 등의 대출 금리는 연 10%를 훌쩍 넘는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운영하다가 폐업한 남미연(가명·52)씨는 대출금 평균 금리가 연 12%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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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영세 자영업자들은 마땅한 담보가 없어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금융권은 “신용평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고금리를 책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코로나 사태’ 때 앞다퉈 받은 대출이 이제 본격적인 원금 상환기에 접어들었다. 자영업 부채 ‘악몽’이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비상계엄 사태와 트럼프 재집권 등 국내외 정치 혼란으로 경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어 빚을 갚는다는 건 갈수록 ‘이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는 “투기성 대출은 줄일 여지라도 있지만, 자영업자 대출 같은 생계형 대출은 막기도, 줄이기도 어렵다”며 “지금 여기서 문제가 더 커지면 도미노식 부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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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원석 대표는 “먼저 ▶잘되는 곳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곳 ▶안되는 곳 등으로 자영업자를 세분화해 상황에 따른 맞춤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과 일본에는 각각 기업회생협회(TMA·Turnaround Management Association),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 등 자영업자의 실태를 진단해 회생과 폐업을 돕는 전문 기구가 있다. 이들 기구에선 회계·법률·금융 등 전문가가 위기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세밀하게 정량 평가를 한 뒤 회생 또는 폐업 여부를 판단해준다. 회생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직접 연결도 해준다. 한국에도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의 ‘희망리턴패키지’ 같은 유사 프로그램이 있지만, 컨설팅이나 취업 교육 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전체 예산도 연 245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김경민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문가 진단을 바탕으로 채무 탕감, 이자 조정, 재정 지원, 개인회생·파산 지원 등 맞춤형 처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금리 장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기 대출 단계에서부터 사업성과 신용도를 토대로 적정한 금리가 책정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영업자 등 금융 취약계층 대상 중금리 대출 공급’이라는 설립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들에 대해 검사와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자영업자 숨통 더 조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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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를 묵묵히 견디던 자영업자에게 비상계엄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다. 충남 천안에서 모텔을 하는 함장수씨가 지난달 4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출입문은 움직일 줄 몰랐다. 그날 가게 문이 열린 건 점심때가 지난 뒤였다. 충남 당진에서 도너츠 매장을 운영하는 송명순(58)씨는 “비상계엄 다음 날(지난해 12월 4일) 첫 손님이 정오가 넘어서 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상계엄이 몰고 온 후폭풍의 최전선에 자영업자가 있다. 쪼그라든 소비심리는 해가 넘도록 회복되지 못했고, 대목이었어야 할 연말연시에는 때아닌 매출 절벽을 겪어야만 했다.

서울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이재승(44)씨는 성수기인 지난해 연말 매출이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고 했다. 그가 최근 만난 포스(POS) 단말기 임대업자로부터 들었다며 전해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자기가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0개 정도를 신규 계약하고, 망한 가게에서 10~12개 정도를 중도 회수한대요. 그런데 지난해 12월에는 회수한 물량이 자그마치 123개였대요.”

지난해 연말 개업한 자영업자들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장승표(44·가명)씨는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신림역 인근 번화가인 ‘별빛거리’에 프랜차이즈 한식집을 새로 열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여파로 유동인구 수가 곤두박질치면서 이른바 ‘오픈빨’(개업 초기 장사가 잘되는 것)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장씨는 “하루 열 팀도 못 받은 날이 적지 않다”고 한숨 쉬었다.

충남 천안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함장수(57)씨는 “최대 대목인 크리스마스 때 나간 방이 총 44개 중 10개도 안 됐다. 숙박업자 모임에 나가보면 올 1월 매출이 역대 최저를 찍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트럼프 재집권으로 촉발된 국제 정세 불안까지 겹치면서 경기 회복은 기대 난망인 상황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은 어떤 식으로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는지 두고 보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문제의 근원인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정책이나 처방을 낸다고 해도 자영업자의 고통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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