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의도 총격전에 주민들 떨었다…26년만에 돌아온 '전설의 대작'

본문

17417604521295.jpg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북한 군부가 남북 화해를 막기 위해 특수부대를 남파시켜 테러를 꾀하는 스토리다.사진 삼성전자

19일 재개봉하는 영화 '쉬리'(1999)는 한국 영화 산업의 판도를 바꾼 작품이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이자,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출발을 알린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석규를 비롯, 송강호·김윤진·최민식 등 화려한 캐스팅에, 당시 한국 영화 최대 제작비인 30억원(마케팅 비용 포함)을 들여 만들었다.

한국최초 블록버스터 '쉬리' 재개봉 #OTT 공개, 리메이크 제작 가능해져#강제규 감독 "'쉬리' 속편 구상 중"

남북 화해를 막기 위해 북한 군부가 특수부대를 남파시켜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를 꾀한다는 설정 또한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리얼한 총격신 또한 화제였다.
여의도 총격 신을 촬영할 때 인근 주민들이 무장 공비가 나타난 걸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지금은 일반화된 전국 동시 개봉을 한 최초의 한국 영화로, 620만 관객(배급사 집계)을 모았다. 당시까지 한국 영화가 거둔 최고의 흥행 성과다.

1741760452302.jpg

영화 '쉬리'에서 배우 최민식은 테러 임무를 수행하러 남파된 북한 특수부대 리더 무영 역을 맡았다.사진 삼성전자

국정원 요원 중원(한석규)과 남파 간첩 명현(김윤진)의 비극적 사랑에 어울리는 삽입곡 '웬 아이 드림(When I Dream)'이 히트하면서 가수 캐롤 키드가 첫 내한 공연을 하는 등 영화는 신드롬 급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대배우가 된 황정민이 중원을 취조하는 국정원 요원으로 엔딩 부분에 출연하기도 했다.

17417604524767.jpg

영화 '쉬리'의 남파 간첩 명현(김윤진)은 국정원 요원 중원(한석규)과 사랑에 빠지는 비운의 여인이다.사진 삼성전자

17417604526669.jpg

영화 '쉬리'에서 중원(한석규)의 국정원 동료 장길로 출연한 배우 송강호. 사진 삼성전자

이처럼 기념비적인 영화가 다시 관객을 만나기까지 왜 26년이나 걸렸을까. 그간 '쉬리'는 온라인에서도 볼 수 없었다. 원래 '쉬리'의 투자 배급사는 삼성영상사업단이었다. 1994년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영상산업 진출을 위해 만든 회사로, 삼성전자의 한 부서 형태로 출발했다. 해외 영화 수입은 물론, '돈을 갖고 튀어라'(1995) '약속'(1998) '태양은 없다'(1999) 등에 투자하면서 한국영화 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하지만 97년 IMF 사태로 인한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으로 삼성영상사업단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공식 해체를 앞두고 미리 투자했던 영화 '쉬리'가 대박을 쳤으니, 삼성에게 이 영화는 '비운의 명작'이었던 셈이다. 이후 '쉬리'의 IP(지식재산권)는 삼성전자에 귀속됐는데, IP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영화를 VOD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볼 수 없었고, 리메이크 또한 불가능했다.

하지만, 메이저 투자배급사 CJ ENM이 '쉬리'의 IP 활용을 위한 대행사로 나서면서 극장 재개봉이 26년 만에 성사됐다. 필름으로 제작된 '쉬리'는 재개봉을 위해 4K 화질로 업그레이드 되고, 총격전과 폭발 신은 음향 리마스터링을 통해 더욱 생생해졌다. '쉬리'의 OTT 공개는 물론, 리메이크 가능성도 커졌다.

17417604528241.jpg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 '쉬리'(1999)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 영화 '1947 보스톤'(2023)을 만드는 등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해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 이어 올해 '쉬리'까지 재개봉하게 된 강제규(63) 감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영화를 관객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쉬리' 재개봉 소감은.

"삼성영상사업단 해체로 담당 부서가 없어지다 보니 IP를 활용할 길이 요원했다. 영화를 이대로 묻어두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재작년부터 여러 사람들을 접촉했다. 다행히 삼성전자가 부가 수익에 대한 고려보다는 작품을 관객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IP 활용을 허락해줬다."

삼성영상사업단 해체가 아쉬웠겠다.

"해체 결정이 난 다음 해에 '쉬리'가 대박이 났다. 영화 성공으로 사업단이 존속해 영화계의 성장 동력이 되길 기대했는데 결국 해체됐다. 하지만 인력들이 업계 전반으로 진출해 콘텐트 산업에 큰 기여를 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여의도 시가전 촬영 때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청담동의 한 가게를 빌려 수족관을 세팅하고 총격전을 찍는데, 인근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쇼크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는데, 그 때 정말 식겁했다."

'쉬리'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작년에 '쉬리' 일본 개봉 25주년을 맞아 재개봉 행사를 했는데, 한 일본 관객이 25년 전 제가 사인해드린 포스터와 DVD를 가져와서 다시 사인해 달라고 하더라. 너무 감사했다. 작품은 관객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는 걸 느꼈다."

17417604529686.jpg

영화 '쉬리'(1999) 흥행 기념으로 한 자리에 모인 흥행 주역들. 왼쪽부터 한석규, 최민식, 강제규 감독, 송강호. 사진 중앙포토

'쉬리'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성취는 뭘까.  

"당시는 감독 개인보다는 한국 영화인이란 생각이 더 강했다. 그 때 한국 영화계는 인프라·시스템이 열악하고 자신감도 없었다. '쉬리'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영화의 흥행보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영화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심어줬다는 점에서 '쉬리'는 큰 선물이었다."

'쉬리'의 속편이 나올 수 있을까. 

"개봉 이후 속편, 리메이크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이후 남북 첩보 스토리의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지켜보면서 '쉬리' 속편에 걸맞는 얘기 구조는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206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