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업 발굴해 투자하던 사모펀드...실탄 많아지자 경영싸움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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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5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세운 투자법인 ‘벤튜라’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 주식을 공개매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범 회장과 맞선 장남 조현식 등과 손잡고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다. 이 시도는 ‘열흘 천하’로 끝났다. 조 명예회장 등이 조 회장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피해는 커졌다. 공개 매수 첫날 2만1850원까지 튄 주가는 열흘 뒤 경영권 분쟁 마무리로 27% 폭락했다.

# MBK가 참전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2의 홈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려아연 노동조합은 지난달 20일 성명서에서 “홈플러스·딜라이브(케이블 TV업체) 등 MBK가 인수해 경영 실패한 사례가 고려아연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국내 기업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사모펀드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경쟁력이 있지만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사모펀드에 기대하는 역할이지만, 단순 지분 투자를 넘어 경영권 분쟁을 주도하는 모습도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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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국 고려아연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지난 1월 23일 오전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진행되는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영풍과 MBK파트너스 규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몸집 커진 사모펀드, 싸움 붙여 돈 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의 경영권 개입이 잦아진 이유로 ‘급성장한 몸집’을 꼽는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결성 규모는 2004년 4000억원에서 2023년 말 136조4000억원으로 341배 성장했다.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실탄(현금)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지배주주 2·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형제의 난’이라 일컫는 경영권 분쟁이 잦아진 환경도 사모펀드의 활동 반경을 넓혔다. 경영권 분쟁은 주가 단기 상승의 재료가 될 수 있어, 단기 이익 추구 성향이 강한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최고 60%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권 승계 대신 매각을 선택하는 지배주주가 늘어난 것 역시 사모펀드의 경영 참여가 적극성을 띄는 이유로 꼽힌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각종 규제와 사법리스크, 제조업 기피 등 한국의 경영 환경이 악화하다 보니, PEF에 회사를 매각하려는 2·3세 경영자도 늘고 있다”며 “최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 통과로, 사모펀드의 주주 행동주의 성향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사모펀드의 경영이 기업 경쟁력 향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가구·인테리어 기업 한샘은 2021년 IMM PE에 인수되기 전인 2020년, 5.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인수 뒤 2023년엔 -0.4%로 하락했다. 락앤락·롯데손해보험 등도 인수 전·후 수익성이 악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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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국내에선 ‘맹수’, 해외에선 꼬리 내리는 사모펀드  

국내 시장에서와 달리 사모펀드는 해외 투자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모펀드의 국내 투자는 28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8% 증가했지만, 해외 투자는 64.9% 감소한 4조원에 그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모펀드는 기존 경영자에 비해 기업 본업의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어 경영 실패 사례도 잦다”며 “해외 투자의 경우, 원화가치 하락과 해외 사모펀드와의 경쟁 기피 등으로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업의 특성상 ‘이윤 추구’라는 목적을 배제할 순 없지만, 사모펀드도 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저평가한 기업의 경영 합리화, 지배구조 개선 등으로 모험자본으로서의 자본시장 내 메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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