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머 싫어요!" 환자들 난색…그뒤 20년, 남자간호사 4만명 시대
-
2회 연결
본문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각각 장기이식센터와 응급진료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유세웅(왼쪽), 임용준(오른쪽)씨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간호사는 한때 여성에게만 면허를 줬던 대표적인 ‘금남(禁男)’의 직업이었다. 1962년에야 국내에서 첫 남자 간호사가 배출됐고, 이후 서서히 늘어 올해 4만명(전체 간호사 면허 소지자 56만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신규 간호사 중 남성 비율은 10명 중 2명(2025년도 국가시험 합격자, 18.1%) 정도에 그친다.
남자 간호사 250여명이 근무 중인 세브란스병원엔 2015년 결성된 ‘남자간호사회’가 활동 중이다. 올해로 21년 차 간호사인 임용준(46)씨는 수년 간 회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었고, 9년 차인 유세웅(33)씨는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임씨와 유씨는 “남자 간호사에 대한 편견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분이 많다”며 “우리가 더는 특이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을 때까지 환자 곁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각각 장기이식센터와 응급진료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유세웅(왼쪽), 임용준(오른쪽)씨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임씨와 유씨는 남자 후배들이 늘었다는 데에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동기 중 남자는 100명 중 3~5명에 그쳤다고 한다.
“어머, 남자가 왜?”, “싫어요!”, “여자 간호사 불러줘요.”… 2004년 이대동대문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던 임씨가 처치를 위해 환자에게 다가가면 이런 말을 듣기 일쑤였다. 병원에 입사한 첫 남자 간호사였던 그는 “그때만 해도 병원에 탈의실도, 유니폼도 없어 사복 위에 가운을 입고 일했다”며 “남자 유니폼이 생긴 것만으로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거부 반응’은 전보다 줄었지만, 직군 내 소수라서 겪는 어려움은 남아있다. 병동마다 하나씩인 여자 탈의실과 달리 남자 탈의실은 건물 전체에 하나, 그것도 지하 5층 같은 구석에 있어 “출퇴근 시간이 배로 걸리는” 불편이 일상적이다. 동성끼리만 나눌 수 있는 업무 고충을 홀로 삼키는 날도 많다. 유씨는 “남자 간호사가 워낙 적어 다른 남자랑 일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며 “편하게 대화하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동성 동료가 없다는 게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남자 간호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일한 경력만 8년인 임씨는 “주취자·정신질환자가 격해지거나, 보호자가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그런 위기 상황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대처할 때 강점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유세웅(왼쪽) 간호사가 어린이 환자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받은 열쇠고리를 바라보고 있다. 남수현 기자
이들은 고정관념과 달리 남자 간호사도 섬세하고, 환자와 신뢰 관계를 맺는 데 능숙하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의외로 남자 간호사들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유대관계를 잘 쌓는 경우가 많다”며 “위급한 환자가 생명을 다시 찾아 퇴원하면서 감사 인사를 해주실 때, 내가 한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렸다는 생각에 보람차다”고 말했다.
장기이식센터 이식지원팀에서 근무하는 유씨는 “심장이식을 받은 10대 환자가 수술 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떡볶이를 꼽길래 직접 요리해서 가져다준 적 있다”며 “아이가 퇴원할 때 ‘고맙다’며 직접 만든 열쇠고리를 건네줄 때 말도 못하게 기뻤다. 일이 지칠 때마다 그때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두 간호사 모두 각자 쌓은 전문성을 확장해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길 꿈꾼다. 임씨는 “새로운 의료기기가 도입되는 등 응급실 현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임상 현장을 지키는 동시에 대학에서 강의도 하면서 생생한 현장 지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경력을 시작한 유씨는 5년째 심장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분야 학회에 참석, 논문을 발표하고 상도 받았다. 앞으로도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문성을 키워나가겠다”고 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세브란스 남자간호사회가 어린이병원 병동을 찾아 환아들에게 선물을 전하는 모습. 사진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병원 남자간호사회는 분기마다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회원 14명이 함께 출간한 책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2023)의 인세를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하고, 지난해 성탄절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공연과 선물을 마련했다.
남자간호사회의 최종 목표는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것”이다. 별도 모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남자 간호사가 보편적인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임씨는 “간호사가 남자인 게 특별하지 않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남자 간호사도 다정하고, 따뜻하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게 환자 곁에서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