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좌파판사 탄핵해야” 트럼프에 ‘보수’ 대법원장 공개비판 “탄핵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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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문화ㆍ예술 공연장인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오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급진 좌파 미치광이 판사. 탄핵해야 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거는 불법 이민자 강제추방 정책을 둘러싸고 행정부와 사법부가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해당 정책에 제동을 건 판사를 험악한 말로 비난하며 탄핵론을 제기하자 대법원장이 이례적으로 공개 성명을 내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발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적성국 국민법’을 동원해 베네수엘라 국적 200여 명을 범죄조직원이라는 이유로 재판 절차 없이 추방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지난 15일 “쟁점 판단을 내릴 때까지 14일 동안 추방을 일시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당일 추방 대상자들을 태운 비행기를 이륙시키며 추방을 강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스버그 판사에 대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18일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오바마(전 대통령)가 임명한 말썽꾸러기이자 선동가인 이 급진 좌파 미치광이 판사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며 “저는 대선에서 승리했고 불법 이민과의 싸움이 역사적 승리의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이어 “저는 유권자들이 원했던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이 판사는 탄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츠 대법원장, 이례적 공개 성명
그러자 로버츠 대법원장이 곧바로 성명을 내고 “지난 200년 이상 (법관) 탄핵은 사법부 결정에 관한 이견이 있을 때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 확립돼 왔다”며 “항소 절차가 이런 때를 위해 존재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의 공개 성명은 극히 드문 일이다.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의사당 로툰다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로이터=연합뉴스
연방 판사의 탄핵은 하원에서 과반 찬성과 상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자력으로 법관 탄핵을 가결시키기는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역사상 탄핵, 유죄 판결로 해임된 연방 판사는 8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심각한 범죄나 개인 행동으로 인해 탄핵당했다”며 “판사의 판결에 대해 탄핵하는 현대적 전통은 없다”고 짚었다.
2005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법치주의와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며 중도적 판결을 내놓곤 해 공화당과 갈등을 빚는 일이 있었다. 2012년 오바마 케어 합헌 판결, 2020년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DACA) 프로그램 유지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로버츠 “판사 협박, 강하게 반대해야”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민 정책을 거부한 판사를 “오바마 (임명) 판사”라고 비난했을 때에도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나 클린턴 판사는 없다. 우리에게는 동등한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가 있을 뿐”이라며 대통령과 각을 세운 바 있다. NYT는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해 말 발표한 ‘연방 사법부 현황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있을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사건 판결에 대해 판사를 협박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며 강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썼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의 성명과 관련해 “성명에서 제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며 “우리에게는 매우 나쁜 판사들이 있다. 악당 판사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베네수엘라 추방 일시 중단 명령을 내린 보스버그 판사를 겨냥해서는 “그는 미쳤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진행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폭스뉴스 홈페이지 캡처
사법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위험수위를 넘나든다는 지적과 함께 3권 분립에 기반한 헌정 체제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 미 언론에서 나온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의 모습을 과시하려 한다”며 “트럼프가 법원과 충돌하는 경로로 가고 있으며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짚었다.
트럼프 정책, 법원서 ‘제동’ 잇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각종 정책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메릴랜드주 연방법원 시어도어 추앙 판사는 이날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정부효율부(DOGE)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 해체를 추진하는 것이 위헌 가능성이 있다며 폐쇄를 위한 추가 조치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또 이날 워싱턴 DC 연방지법 아나 레예스 판사는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의 군인 복무를 사실상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해 “미국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항소 이후 상급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현재 군 복무 중인 성전환자의 신분에는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도 지난달 매사추세츠주 연방법원이 수정헌법 제14조 위반을 들어 전국적 효력 정지 명령을 내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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