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요즘 NBA 팀들 일부러 진다…반세기만에 나타난 '백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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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크를 시도하는 듀크대 포워드 플래그(왼쪽). 3월의 광란을 뜨겁게 달굴 NCAA 수퍼스타다. AP=연합뉴스
'3월의 광란(March Madness)'. 매년 3월에 열리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 농구 1부 챔피언십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전역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68개 대학이 단판 토너먼트로 승부를 겨뤄 최강 팀을 가린다. 단판 승부로 치러지는 만큼 이변이 속출하는 대회다. 대학가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이 들썩인다.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선 경기마다 실시간 배당률이 공개된다. 미국인 사이에선 우승 팀 맞히기가 벌어진다. 미국게임협회(AGA)는 "미 전역에서 31억달러(약 4조5000억원) 이상 규모의 승부 내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 농구 대회에 '광란'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20일 개막한 올해 대회는 예년보다 열기가 더 뜨겁다. 반세기 만에 등장한 백인 수퍼스타 덕분이다. 듀크대 신입생 쿠퍼 플래그(18)가 그 주인공이다. 키 2m6㎝의 백인 포워드 플래그는 공·수 능력과 운동신경을 두루 겸비한 특급 유망주다. 여기에 BQ(농구아이큐)까지 뛰어나 "반세기 만에 환생한 래리 버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래리 버드(69)는 보스턴 셀틱스를 세 차례 챔피언(1981·84·86년)으로 이끈 레전드다. 당시 NBA에서 보기 드문 백인 선수였던 버드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66)과 라이벌 구도를 이뤄 1980년대 NBA의 흥행을 이끌었다. 버드는 인디애나 주립대 4학년이던 1979년 NCAA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플래그는 포지션(포워드)과 신장은 물론 지능적인 플레이 스타일까지 빼닮았다.

플래그(오른쪽)는 남다른 운동신경은 물론 지능적 플레이에도 능하다. 로이터=연합뉴스
플래그가 버드보다 더 기대를 모은 건 나이 때문이다. 플래그는 고교 졸업 1년을 앞둔 지난해 대학에 월반했다. 그는 2006년 12월생으로 만 18세다. 고교생이 대학에 와 서너 살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대학 무대를 뒤흔드는 셈이다. 플래그는 오는 6월 미국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선발이 확실시된다. 플래그가 1순위로 뽑힌다면 1977년 켄트 벤슨 이후 48년 만에 '백인 1순위 지명 선수'가 탄생하게 된다.
3월의 광란은 그가 프로 무대에 뛰어들기 전 농구 팬들에게 기량을 선보이는 '쇼케이스'가 될 전망이다. NBA는 하위권 팀들에게 다음 시즌 신인 선발 상위 지명권을 준다. 순위가 낮을수록 신인 선발 우선권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러다 보니 다음 시즌 대상 신인 선수 중 초대형 유망주가 있을 땐 올 시즌은 포기하고 신인 선수를 영입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팀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2024~25시즌이 그렇다. 정규리그 하위 팀 중 일부는 플래그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경기를 졌다는 의혹을 받는다.
플래그의 성장 스토리는 한 편의 '농구 만화' 같다. 미국 메인주 인구 약 3000명의 소도시 뉴포트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농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랄프)와 어머니 켈리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부모의 DNA를 물려 받은 플래그는 두 살 위 선수들과 맞붙어도 압도할 만큼 남다른 실력과 체격을 자랑했다. 중학교 땐 인근 지역에도 '농구 천재'로 소문나면서 고교 강팀들의 영입 대상 0순위로 떠올랐다.

덩크슛을 시도하는 플래그(왼쪽). 고교생 나이로 대학 무대를 뒤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플래그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그는 2021년 어머니의 모교인 뉴포트의 노코미스고교에 진학했다. 노코미스 농구부는 플래그 입학 직전 시즌 3승 15패에 그친 약팀이었다. 하지만 플래그가 합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플래그가 입한 해 노코미스고는 21승 1패를 기록하며 주 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혼자 힘으로 만년 하위팀을 주 최강팀으로 이끄는 반전 드라마를 쓴 것이다.
고향 팀에서 더는 이룰게 없자, 플래그는 이듬해 플로리다주의 몬트버드 아카데미로 전학했다. NBA 스타를 숱하게 배출한 농구 명문고다. 고향 팀에서 더는 이룰게 없자, 플래그는 이듬해 플로리다주의 몬트버드 아카데미로 전학했다. NBA 스타를 숱하게 배출한 농구 명문고다.
이곳에서 플래그는 날개를 마음껏 펼치며 그해 전국구 스타로 거듭났다. 플래그가 이끈 몬트버드는 33승 무패를 질주하며 전국 제패에 성공했다. 당시 NBA 수퍼스타 르브론 제임스(41·LA레이커스)가 플래그의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플래그는 2022년 역대 최연소로 '올해의 미국 남자 농구 선수'에 선정됐다. 이후에도 그는 승승장구하며 '올해의 미국 고교 선수' '올해의 미국 남자 고교 선수' '고교 농구 올스타(이상 2024년)'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파리올림픽 미국 농구대표팀의 파트너 선수로 뽑혔던 플래그. AFP=연합뉴스
일찌감치 고교 무대까지 평정한 플래그는 2024년 월반해 대학에 들어갔다. 수많은 대학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대학 농구 전통의 강호 듀크대에 입학했다. 동시에 파리올림픽에 나설 미국 농구대표팀의 훈련 파트너에도 선정됐다. 총 15명이었는데, 플래그를 제외하곤 모두 NBA 정상급 선수들이었다. 코트에서 플래그의 실력을 직접 본 제임스, 스테픈 커리(37·골든스테이트), 앤서니 데이비스(32·댈러스) 등 미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수퍼스타의 자질을 가졌다'며 실력을 인정했다. 대학에서도 플래그의 적수는 없었다. 신입생 플래그는 안주하지 않고, 수비 능력을 키워 공·수 만능인 '농구 괴물'로 진화했다. 결국 'NCAA 올해의 선수' '대학 신인상' '대학 올스타(이상 2025년)'를 모두 수상했다. 마블 영화의 주역 '캡틴 아메리카'를 닮은 훈훈한 외모까지 갖춘 덕분에 미국 어느 곳을 가든 팬이 구름떼처럼 몰린다. 그가 코트에 나설 때마다 관중은 "NBA 대신 듀크에서 1년 더"를 외친다.

월반해 듀크대에 입학한 플래그. 사진 플래그 인스타그램
미국이 플래그에 열광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인 스타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최근 NBA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 선수들이 득세하고 있다. 세르비아 출신 니콜라 요키치(30·덴버)와 그리스 국적 야니스 아데토쿤보(31·밀워키)가 최근 6년 새 최우수선수(MVP)를 각각 세 차례(2021·22·24년)와 두 차례(2019·20년)씩 받았다.
차세대 MVP로 꼽히는 루카 돈치치(26·LA레이커스)는 슬로베니아 국적, 돈치치의 경쟁자 빅토르 웸반야마(21·샌안토니오)는 프랑스다. 마흔이 넘은 제임스와 30대 후반의 커리는 선수로는 황혼기다. 이런 가운데 플래그의 등장은 미국 팬에게 한줄기 빛이다. 미국인은 '플래그가 향후 10년간 NBA를 이끌 미국인 스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플래그는 대학 무대 마지막 대회가 될 '3월의 광란'에서 우승하겠단 의지가 강하다. 그는 지난 15일 발목 부상을 당했지만, 22일 대회 64강전에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존 셰여 듀크대 감독은 "플래그는 첫 판부터 경기에 뛸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밝혔다. 전체 2번 시드를 받은 듀크대는 플래그를 앞세워 우승에 도전한다. 듀크대의 마지막 우승은 2015년이다.
피주영 기자 xxxxxxxxxxx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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