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Health&] 10년 뒤에도 재발하는 유방암, 전이 땐 허투 시그널부터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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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0·1·2기 유방암 환자 90% 이상
ADC 항암제로 허투 표적치료 넓어져
전이성 유방암 분류 기준도 새롭게 변경

유방암은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질환이다. 암세포가 광범위하게 퍼진 전이성 유방암은 암세포의 조직학적·생물학적 특징에 따라 세부 유형이 나뉘고, 각각의 유형에 따라 항암 치료 전략이 달라진다. 최근 암세포 성장·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허투(HER2)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에, 항암 치료 효과가 높은 세포 독성 항암제를 결합한 항체약물접합체(ADC) 계열 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전이성 유방암 치료 트렌드가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전이성 유방암 치료 전략을 세울 때도 허투 시그널을 우선 살필 것을 강조한다. 중앙일보 Health&은 허투 표적치료 효과가 입증되면서 주목받는 허투 발현 유방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유방암 허투 시그널 찾기’ 캠페인을 진행한다. 첫 번째 주제는 달라진 유방암 분류 기준이다.
한국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은 유방암이다. 한 해 2만8000여 명이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유방 촬영술 등 유방암 선별 검진이 활성화된 한국은 조기 유방암 발견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유방암학회에서 발행한 ‘유방암백서 2024’에 따르면 국내에선 조기 유방암으로 분류되는 0·1·2기 환자가 90% 이상이다. 유방암은 조기에 발견·치료하면 10명 중 9명이 5년 이상 생존한다. 유방암 10년 생존율도 89.3%로 높다. 문제는 유방암 재발로 인한 암세포 전이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는 “유방암은 암세포 성장 속도가 느려 10년, 20년이 지나서도 암세포가 다시 증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출처: GettyimagesBank
허투 발현도 낮아도 치료 효과 입증
전이성 유방암 치료 판도를 바꾼 것은 허투를 표적으로 하는 ADC 계열 항암제 ‘엔허투’다. ADC 계열 항암제는 암세포 등을 식별하는 항체의 안내를 받아 암세포로 진입하면, 항체와 세포 독성이 있는 약물이 분리되면서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기전을 가졌다. 정해진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유도미사일과 비슷해 ‘유도미사일 항암제’라고도 불린다. 엔허투는 유방암에서 나타나는 허투 단백질 항원을 표적으로 하는 항체인 트라스투주맙과 암세포를 사멸하는 성분인 데룩스테칸을 결합한 치료제다. 표적이 되는 허투 시그널이 강할수록 항암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
엔허투는 허투 발현 수준이 낮은 유방암 환자에게서도 기존 치료법 대비 우월한 치료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허투 저 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 연구에서 엔허투는 기존 치료법과 비교해 암세포가 증식하지 않는 무진행생존기간(PFS)을 2배 이상 늘렸다. 또 전체생존기간(OS)에서 사망 위험을 36% 이상 줄였다. 허투를 표적으로 한 전이성 유방암 치료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해당 임상 연구는 2022년 암 치료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됐다. 기존에도 허투를 표적으로 치료하는 여러 항암제가 있지만, 허투 발현도가 높은 허투 양성 유방암에만 효과가 있었다. 손 교수는 “과거엔 허투 수용체가 있어도 발현도가 낮을 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어 사실상 허투 음성 유방암으로 분류됐다"며 "부작용이 심한 세포독성 항암제로 치료해야 하는 등 한계가 존재했다”고 말했다.
허투 표적 치료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전이성 유방암에서 허투 시그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임상 현장에서도 허투 시그널을 중심으로 유방암을 분류하도록 기준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기존 허투 발현도가 낮아 허투 표적치료를 받지 못했던 이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현장의 숙제가 됐다. 손 교수는 “달라진 유방암 분류 기준을 적용하면 허투 표적치료가 어려운 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의 60%,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의 경우 50%에서 허투 시그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새 기준 적용하면 기존 알던 유방암 아닐 수도
손 교수가 진료했던 전이성 유방암 환자 이지영(가명)씨의 사례가 한 예다. 이씨는 2020년 전이성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허투 발현도가 낮아 삼중음성 유방암으로 분류돼 세포독성 항암제로 치료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엔허투가 허투 저발현 유방암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적응증이 추가되자 손 교수는 허투 저발현 검사 결과를 근거로 엔허투 처방을 권고했다. 항암 치료 전략을 바꾼 이씨는 현재까지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유방암 환자의 허투 시그널은 일차적으로 허투를 표적으로 하는 허투 수용체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면역조직화학(IHC) 검사, 이차적으로 허투 유전자 증폭 수준을 측정해 허투 수용체 발현도를 살피는 제자리부합법(ISH) 검사 등을 종합해 구분한다. 허투 발현도를 기준으로 유방암을 분류하면 ▶허투 시그널이 강력한 허투 양성 유방암 ▶허투 저발현 유방암 ▶허투 초저발현 유방암 ▶허투 수용체가 없는 허투 음성 유방암으로 나뉜다. 손 교수는 “전이성 유방암은 세부 유형에 따라 최적의 치료 전략이 달라지는 만큼 유방암 환자라면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위해 허투 시그널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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